현재 한국 경제는 1995년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이후 지금까지 9년간 마(魔)의 1만달러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단계를 신속히 넘어서지 못하고서는 소득 2만달러 시대로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선진 복지국가의 달성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1만달러 소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노동집약적 요소주도형(factor-driven) 발전이나 자본의 집중적 투자 및 대량생산 등을 통한 투자주도형(investment-driven) 발전 모델만으로는 이 단계의 벽을 넘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지난 9년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도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득 2만달러 시대의 사회는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가. 2002년 현재 소득 2만달러 국가는 총 22개국이다. 이들 국가는 크게 서방선진 7개국(G7) 그룹, 중동의 에너지.자원부국, 유럽 강소국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있어서는 G7 그룹과 어느 정도 견줄 수 있으나 자원.기술 수준 등에서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이들 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때문에 소득 2만달러 시대의 달성을 위한 전통적 방법의 벤치마킹이 근본적으로 어렵다.
현재 전문가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국가혁신체제 구축, 신 성장 산업의 육성, 세계 초일류 기업의 육성, 혁신 지향적 중소기업의 육성, 외국인 투자의 활성화 및 지역 균형발전과 남북통일 문제 등으로 2만달러 시대가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계획의 핵심적 요소는 생산기술 확보와 원천기술 개발능력 상승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대부분이 국토면적. 인구 및 경제규모 등에서 우리보다 우월하지 못함에도 소득 2만달러 이상의 복지국가를 이루고 사는 이유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은 정치.역사.문화.언어 등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도 상당수의 고급 인력이 중국.인도.한국 등과 같은 나라에서 유학 온 뒤 체류하면서 연구.개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미국의 시민권자가 전 인구의 1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제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나머지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미국 거주 외국인인 셈이다. 이는 이제 한국도 기술개발에 있어 민족주의적인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선진국이 자국 내에서만 모든 리소스(resource)를 해결하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이런 측면에서 원천기술 및 첨단 기반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러시아는 고급 산업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우리에게는 좋은 협력 파트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원천.기반기술 및 에너지를, 러시아는 우리로부터 생산.제조기술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체제혼란 및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기술이전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세계판매 1위의 에어컨, 김치냉장고, 무세제 세탁기, PDP 핵심기술, CDMA 4세대 기술 및 패트리엇 미사일과 유사한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함대함 미사일 등이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의 보잉, 독일의 다임러 벤츠 등 세계 기술 최선진 기업들도 러시아와 기술협력에 진력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 사회 전반적인 체제가 안정되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수년 이후에는 러시아로부터의 기술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제대로 된 원천기술이 없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상당한 시간을 소요해야 할 한국은 러시아와의 산업기술분야 협력의 확대를 통하지 않고는 난국을 돌파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러시아와의 원천기술.기반기술 협력은 대미.대일 기술 종속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는 또 중소기업에 대한 산업기술의 다변화.다각화를 이루고 기술경쟁력을 갖추게 해 소득 2만달러 시대의 복지사회 건설이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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