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안늙는 ‘꿈의 소녀’
“나이 45세. 미국 태생. 그러나 외모는 여전히 18~20세를 유지하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녀. 물론 가족과 남자친구는 있지만 미혼.”
세계 어디선가 3초마다 하나씩 팔린다는 인형 ‘바비’의 신상명세서다. 150여개국의 어린소녀들이 머리를 빗질하고 옷을 갈아입히며 자신의 환상을 담는 인형 바비는 작은 얼굴,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긴 다리로 서양미인의 전형이 되었으며, ‘바비인형같은’이란 수식어를 만들어냈다.
1959년 미국의 장난감회사 마텔사의 여사장 루스 핸들러는 종이인형을 가지고 노는 딸 바바라를 보며, 아이들이 ‘꿈의 여성상’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인형제작을 시도했다.
바바라의 애칭인 ‘바비’로 이름지어진 첫작품은 줄무늬 수영복차림에 긴머리를 하나로 묶은 17세의 아름다운 소녀. 그해 바비는 뉴욕완구박람회에서 대인기를 얻었다. 당시의 인형이란 그저 젖먹이아기모양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60년대 이후 바비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비비안리 오드리헵번 같은 스타의 모습으로, 소방대원 의사 외교관 우주비행사 등으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사회진출한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지향하는 소녀들의 바람에 바비는 충실하게 부응했다.
바비의 삶은 시대의 모습 또한 반영했다. 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된 1961년에는 재클린의 헤어스타일인 버블컷을 한 바비가 인기를 얻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67년에는 흑인바비가 탄생했다.
미국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92년에는 대통령후보가 됐고, 97년에는 ‘미소를 나눠요’라는 이름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되기도 했다. 바비가 지금까지 가졌던 직업은 75개. 흑인 스페인계 아시아계인 바비의 친구들은 인종과 국가의 장벽을 넘어선 우정을 전하기도 한다.
바비는 또 현대패션의 최고모델이었다. 60년대의 비틀스룩, 70년대의 디스코룩, 90년대의 스포티룩까지 모든 유행패션을 바비는 보여주었다. 이브생로랑, 크리스찬 디올, 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등 400여명의 유명디자이너들이 한정제작으로 바비의 옷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오늘날 바비는 어린소녀들만의 친구가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시절의 꿈과 순수함을 좇는 키덜트족들이 바비를 수집하고, 교환하고, 옷을 디자인하며 바비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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