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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수확용 배낭
“야! 정훈아 집에 있냐?”
창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남수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얼른 들어와. 밖에서 뭘 하고 있어?”
나는 창문으로 몸을 내밀며 손짓을 하며 재촉했지만, 남수는 좀처럼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인데, 사람을 불러 내냐? 네가 들어올 것이지.”
“하하, 그럴 일이 있어서.”
남수는 씨 익 웃어 보이며 도화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남수가 내민 종이에는 알 수 없는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빽빽이 써 있었다.
“난 뭐가 뭔지 모르겠다. 겨우 이따위 종이 한 장을 주려고 이 저녁에 날 찾아왔냐?”
“참내! 뭘 모르는구나. 이것이 바로 내 발명품의 설계도면이란 말이다.”
남수의 말을 듣자 나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나와 남수는 일주일쯤 전에 누가 먼저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가를 내기 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는 제대로 된 아이디어조차도 못 만들고 있는데 남수는 벌써 도면까지 만들어 온 것이다.
“왜? 놀랬냐?”
남수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놀라기는... 어디 설명이나 한번 들어보자.”
나는 애써 태연한척 하며 남수에게로 바짝 다가앉았다.
“헤헤, 사실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야. 만드는 도중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서 너랑 의논 하려고...”
“이것은 너랑 내기하기 전에 이미 구상한 것이야. 얼마 전에 엄마가 고추밭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것을 보고 만들기로 결심했어.”
남수는 꽤나 진지한 얼굴로 설명해 나갔다.
남수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고추를 편리하게 담을 배낭이었다. 고추를 따는 일은 허리가 아프고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남수는 고추를 따서 주머니에 담는 일이라도 편하게 해드려야겠다고 결심한 듯 했다.
“배낭의 아래 부분과 윗부분에 지퍼를 달았어. 그리고 헝겊 팔을 붙여서 그곳으로 고추를 넣을 수 있도록 했어. 그런데 바로 이 헝겊 팔이 문제야.”
남수는 그림의 이곳저곳을 짚어가며 자세히 설명했다. 그제 서야 나는 남수가 그린 그림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배낭의 그림이었는데 배낭의 주둥이 부분과 밑 부분에 지퍼를 달아서 쉽게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특히 이 배낭의 특징이라 한다면 배낭의 옆구리에 붙어있는 한 쌍의 헝겊 팔이었다. 그것은 마치 옷의 팔 부분처럼 생겨서 팔의 입구를 무엇을 넣으면 배낭 안으로 굴러들어가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헝겊 팔을 사람의 팔에 고정시켜 사람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이도록 고안하였다.
“뭐가 문제니?”
나는 남수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의 팔에 이 헝겊 팔을 고정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팔을 움직이는 것이 상당히 힘들어 지더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수는 자못 심각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보아하니 이 문제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듯 했다.
‘고정되면서도 동시에 움직임이 편한 것이라⋯’
나는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무심결에 한마디를 쑥 내뱉었다.
“고무줄을 사용해 봤냐?”
그 순간 남수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맞아! 바로 그거야. 확실히 정훈이 너는 천재야! 내가 일주일을 고민하고도 해결 못한 일을 단 몇 분 만에 풀어버리다니!”
남수는 펄쩍펄쩍 뛰며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씩하고 사라져갔다.
남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새삼스레 부끄러움을 느꼈다.
‘매일 힘들게 밭일을 하시는 어머니께 나는 무엇을 해드렸나?’
부모님의 지친 모습이 눈앞을 지나갔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나도 이번 발명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서 활용하자!”
나는 달빛을 받으며 서서 혼자 중얼거렸다. 왠지 무척 기분이 좋은 밤이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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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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