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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레이 개량 호스
날카롭고 길게 뻗은 잎사귀. 언뜻 보기에는 보통의 잡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는 난초. 나는 난초를 볼 때마다 참 이상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정말 이상해요. 이렇게 그냥 길게 뻗은 잎사귀뿐인데, 왜 귀하게 여겨지는 걸까요?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데...”
“글쎄, 옛 어른들은 난초에 기품이 있다고 생각하셨단다. 고고하고 품격이 높은 선비들하고 어울린다고 여기신 거지.”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잘은 모르지만 왠지 깨끗하고 고귀해 보인다고 생각해. 그리고 무엇보다 난 꽃이 품어내는 향기가 아주 좋단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장미나 다른 서양 꽃들보다 훨씬 낫단다.”
난초의 잎을 조심스레 매만지는 엄마의 손길이 유난히 부드럽고 아름답게 보였다.
“하영아, 너도 난초를 키워 보겠니?”
“저도요?”
“그래 난초를 키우면 인내심도 생기고 성격도 차분해 진단다. 꼼꼼히 정성스럽게 돌봐 주거라.”
엄마는 꼬마 난초가 심긴 작은 화분을 내 앞에 내미셨다. 아직 잎도 그리 크지 않고 색깔도 옅은 것이 아기 난초인 것처럼 보였다.
“네, 잘 돌볼게요.”
나는 엄마와 손가락을 걸고 굳게 약속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난초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늘 이야기를 해주고, 잎사귀를 닦아주며 애정을 표시해야지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스프레이로 조금씩 물을 뿌려 가면서, 잎을 닦아 주고, 흙이 마르지 않도록 조금씩 물을 주거라.”
나는 엄마의 당부를 마음 깊이 새겨 두었다.
‘아주 멋진 어른 난초로 키워야지. 나도 옛 선비들처럼 난초와 대나무 같은 것들을 친구로 사귀어 봐야겠다.’
나는 아주 작은 난초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고 아침 인사를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는 잎사귀를 깨끗이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다시 한번 물을 뿌려주며 인사를 하였다. 난초는 그럴 때마다 기다란 잎을 살짝 흔들며 가볍게 인사를 하곤 하였다.
이렇게 매일 난초를 돌보는 일은 꽤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긴 하였지만, 또 동시에 한번도 거를 수 없는 나의 낙이기도 했다.
“아주 잘 크는 구나. 우리 하영이가 제법 성실하게 돌봐 주었는가 보지?”
“그럼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인사를 하면서 잎을 닦아 주었는걸요. 보세요. 이 잎도 훨씬 굵어지고 길어졌잖아요.”
나는 자랑스럽게 난초 화분을 내놓았다.
“어려운 점은 없었니?”
“글쎄요... 아! 맞아요. 스프레이가 말썽을 피워서 가끔 애를 먹었어요.”
“스프레이가?”
“네.”
나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동안 스프레이 때문에 애를 먹었던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분이 났다.
“스프레이에 물이 적어지면 기울여서 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기울이면 자꾸 물이 안나오는 거여요.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흠, 그렇겠구나. 엄마도 여러 번 그런 일을 당했었단다. 정말 불편했었지.”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마도 스프레이 안의 작은 호스가 한쪽에 쏠려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호스와 반대쪽으로 스프레이를 기울이면 물이 안나오게 되는 것이지.”
엄마의 설명을 듣고 나니 모든 것이 선명히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스프레이 안의 호스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주면되겠네요?”
“그렇구나.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될까? 엄만 잘 모르겠구나.”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스프레이를 기울이는 쪽으로 안의 호스가 움직여 주면 좋은데⋯ 방법이 없을까?’
나는 스프레이를 이리 저리 기울여 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어떻게 하면 호스가 움직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땡땡땡!’
그때, 갑자기 세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순간,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맞아! 괘종시계의 추! 추를 다는 거야. 그럼 추의 무게에 의해 호스가 움직일 테니까.’
나는 당장 스프레이에 나의 생각을 실험해 보았다. 과연 생각대로 효과 만점이었다.
“야호! 성공이다. 이젠 스프레이 때문에 애먹을 일이 없겠다.”
나는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난초야. 이젠 더 시원한 물을 뿌려 줄께. 내가 스프레이를 멋지게 고쳤거든.”
난초는 기쁜 듯이 잎사귀를 살짝 흔들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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