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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컴파스
“야! 네 책가방은 그게 뭐냐? 구멍이 숭숭 나있고! 히히히 고물이다. 고물.”
우리 반에서 제일 심술궂은 승훈이의 목소리이다.
‘참내, 저 녀석이 또 시작이군.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으니.’
나는 자리에서 살그머니 일어나서 승훈이의 자리 쪽을 건네다 봤다. 승훈이는 책가방 하나를 휘휘 둘러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승훈이의 짝인 정민이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승훈이가 휘두르는 가방은 정민이 것인 것 같았다.
“야! 정민이 가방 돌려주지 못해!”
나는 보다 못해 큰 소리로 승훈이를 위협해 보았다. 그러나 승훈이는 더욱 기고만장하게 떠들어댔다.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해? 네가 정민이 애인이라도 되냐? 아하! 얼굴이 벌게지는걸 보니 사실이구나. 얼레리 꼴레리⋯”
“저 자식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승훈이에게 덤벼들었다. 우리 둘은 한데 뒤엉켜서 교실바닥을 굴러다녔다. 교실 안은 아이들의 함성과 책상 쓰러지는 소리로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얼마동안 치고받았을까? 갑자기 엄하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제 서야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승훈이와 나는 바닥에 엎드려서 숨도 죽인 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 교실에서 싸움을 해? 둘 다 복도에 나가서 손들고 서있어. 승훈이는 정민이 책가방까지 들어.”
선생님께서는 일의 자초지종을 들으시고는 우리에게 벌을 내리셨다. 우리는 선생님의 엄한 말씀에 항변도 못하고 복도로 나왔다.
교실 안에서는 수업이 시작되었고, 국어 책을 읽는 정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임마, 왜 정민이를 괴롭히냐?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쳇! 괴롭히긴 누가 괴롭혔다고... 먼저 눈 흘긴 게 누군데!”
승훈이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
“컴파스를 그냥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잖아. 그러면 가방에 구멍이 많이 생긴다고. 그래서 충고를 했더니 괜찮다고 무시하는 거야 치!”
승훈이는 여전히 볼멘 목소리로 입을 삐죽였다.
정민이의 가방은 여기저기 흉한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민이 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고 있는 불편이었다.
“아하! 그래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미안하다.”
“아니야 내가 잘못한거지 뭐...”
우리 둘은 순식간에 사과를 하고 서로 킥킥거렸다.
“너랑은 오해가 풀렸는데⋯ 정민이는 계속 날 미워할지도 몰라. 어쩌지?”
승훈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 하지 마. 우리 둘이 힘을 합해서 안전한 컴파스를 만들어 보자. 그래서 그것을 정민이에게 선물하면 화가 금방 풀릴 거야.”
“정말 그럴까?”
“물론이지. 정민이 뿐이겠니? 우리 반 전체가 모두 기뻐할 거야.”
“좋아 해보자.”
그날부터 우리 둘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여러 가지 생각을 주고받았다.
“바늘 끝에다 뚜껑을 씌우는 것은 어떨까?”
“뚜껑을 잃어버리면 말짱 헛일이라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이용해 보았으나 정작 쓸모 있는 것은 한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칼을 가지고 연필을 깎다가 우연히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승훈아! 이것 봐.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는 한 손엔 연필 깎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컴파스를 들고 교실 안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잘 봐! 컴파스의 밑 부분을 이 칼처럼 접히게 하는 거야. 그러면 바늘이 안으로 들어가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
“야! 정말 기발하다.”
승훈이와 나는 서로 얼싸 안고 좋아 했다.
드디어 완성된 컴파스를 정민이에게 건네주는 날이 되었다. 승훈이는 정민이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를 쓰고 나는 컴파스를 예쁘게 포장했다.
“정민이가 무척 좋아 하겠지?”
“그럼!”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나의 눈에는 컴파스를 받아들고 활짝 웃는 정민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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