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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사용할 수 있는 마이크
“안돼! 지금 만화영화 할 시간이란 말이야!”
“싫어!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온다고 했어. 난 이거 볼 거야.”
“오늘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할 거란 말이야. 어제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처했었어. 꼭 봐야해!”
“웃기지마. 맨 날 그런 식으로 너 보고 싶은 것만 봤잖아. 오늘은 양보 못해!”
은수와 나는 TV 앞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웠다. 고집불통인 은수는 이제껏 제 맘대로 TV 채널을 바꿔 놓고선 끝까지 양보를 안 하려고 했다.
“리모콘 이리 내놔. 이번엔 꼭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거야!”
나는 은수의 손에서 잽싸게 리모콘을 빼앗았다.
“어! 그러는 게 어디 있어! 힘세면 다야? 맨 날 힘으로 해결 하려고 해!”
은수는 입을 잔뜩 내밀고는 한참을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얼마나 목청을 높여 불평을 늘어놓는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은수의 행동에 신경도 안 쓰고 계속 TV만 쳐다봤다. 내가 이렇게 대꾸도 안하고 쳐다보지도 않자, 은수는 제 풀에 지쳐 잠잠해졌다.
“이제, 다 떠들었니? 왜? 좀더 소릴 질러 보시지?”
“몰라! 누난 마귀할멈이야!”
은수는 혓바닥을 불쑥 내보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꽤나 골이 난 듯했다.
“그 만화는 내일 다시 재방송 해주잖아.”
나도 질 새라 같이 퉁명하게 쏘아 붙였다.
“누나야 말로 그 가수는 맨 날 나오잖아. 쇼프로에선 매일같이 나오더라.”
우리의 눈에서는 번쩍번쩍 불꽃이 튀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머리만 커다란 이 짱구 녀석아.”
“힘만 센 돼지 누나야.”
우리가 이렇게 한참을 소리 높여 싸울 때였다. 갑자기 TV 화면이 제멋대로 바뀌더니, 아빠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들 또 채널 싸움이지? 오늘부터 너희들은 절대 TV에 손대지 마. 아빠가 고정시켜 놓은 프로그램만 보는 거야.”
아빠는 리모콘을 손에 든 채로 뒷짐을 지고 서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우리는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쪼그리고 앉았다.
“하 앙... 또 뉴스야. 아깐 어른들끼리 토론하는 방송이더니.”
“어른들은 왜 이렇게 재미없는 것만 볼까?”
은수와 나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풀린 눈으로 멍하니 TV를 바라보았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세 시간째 TV 앞에 붙어 앉아 있었지만, 아빠는 아주 재미없는 프로만 골라서 채널을 돌리셨다. 재미난 연속극도 있고, 퀴즈 프로그램도 있는데...
나는 조금씩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동생한테 조금만 양보할 것을 괜한 고집을 피운 것 같아 미안했다.
“누나 저 사람 웃기지 않아?”
은수는 슬그머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녀석도 분명 나처럼 후회하고 있는 듯 했다.
“누가?”
나는 은수가 가리키는 TV화면을 바라보았다. TV에서는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마이크를 가지고 둘이 바꿔가며 이야기 하느라 꽤 애를 먹고 있었다.
“어이쿠, 저러다가 마이크 떨어뜨리겠다.”
아빠도 안타까운지 혀를 차셨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누나는 발명박사잖아.”
은수는 미소를 살짝 띠운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기계박사잖아. 네가 더 잘 할걸!”
나의 칭찬에 은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나도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보다 은수가 훨씬 어른 같고, 또 생각이 깊은 것 같았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문 너머로 파란 은행나무가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앗! 바로 저거야. 은행나무 가지!”
나는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저 은행나무 가지처럼 마이크를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한 마이크 대에서 두개의 마이크 가지가 갈라져 나오면... 어때? 둘이서 이야기하기에 편하지 않겠어!”
나는 창문 밖의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정신없이 떠들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라 옳은지 그른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야! 그것 근사한 생각인데? 누나는 확실히 머리가 좋아.”
은수도 따라서 흥분하며 박수를 쳤다.
“그래? 그럼 네가 그런 마이크를 만들어 볼래? 원래 기계엔 네가 전문이잖아.”
“와! 그런 근사한 아이디어를 날 주는 거야?”
은수는 신이 났는지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 보셨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항상 웃으시는 분인데... 나는 아빠의 미소를 보고 더욱 부끄러워졌다.
“좋다. 오늘은 둘이 멋지게 화해하고 근사한 아이디어도 만들었으니, 아빠가 맛있는 피자를 사주마!”
“우와! 신난다!”
은수는 인디안 들처럼 온 방안을 헤집고 다니며 춤을 추었다. 그런 은수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아빠, 죄송해요. 다신 은수랑 싸우지 않을게요. 그리고 은수야 내일부턴 더욱 사이좋게 지내자.’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짧은 편지를 써 은수와 아빠에게 보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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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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