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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식 도장 뚜껑
나는 아빠의 책상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빠가 일하시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두툼한 서류 책에 번쩍번쩍 빛나는 만년필로 멋있게 사인. 그런 다음 도장에 인주를 묻혀 꾹 눌러주고...
아빠가 움직이는 손끝 하나하나가 근사하게 돌아가서,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야, 어른들이 하는 일은 정말 재미있구나. 나도 공부는 하지 않고 저렇게 사인이나 도장을 찍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긋지긋한 산수 문제집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채,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사인을 근사하게 하는 거야. 얼마나 멋있어! 그 때가 되면 내게도 멋진 도장이 여러 개가 생길거야.’
나는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학교에 앉아 산수 문제나 풀고 있는 것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더 멋지게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오늘은 윤주가 아빠를 도와주었으니 맛있는 점심을 사주마.”
“와! 아빠가 자주 서류를 빠뜨리고 출근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아빠 회사도 구경하고 점심도 먹고... 정말 좋네요.”
나는 아빠의 팔에 매달려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와 단둘만의 데이트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신이 났던 것이다.
회사들이 많은 때문인지, 거리는 유독이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동네에서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느릿느릿 걷는 아줌마들은 하나도 없고, 전부 거의 뛰다시피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시내에 나오니까 정신이 없지? 이곳은 유난히 사람들이 바쁜 곳이란다. 그런데 우리 공주님은 뭘 먹을까?”
아빠는 주위를 둘러보셨다. 아마도 적당한 음식점을 찾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나도 주위를 둘러보며 피자집을 찾아보았다. 그때 길 건너 저편에 작은 도장집이 내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왜? 먹고 싶은 것이라도 발견했니?”
“그게 아니고요... 저... 도장은 몇 살부터 가질 수 있는 거여요?”
“도장?”
아빠는 잠시 눈을 깜빡이시더니, 좀 전에 내가 시선을 모았던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오호라... 우리 윤주가 도장이 갖고 싶은 게로구나. 옳지, 아빠가 윤주 몫의 도장을 하나 만들어 줄까?”
“정말요?”
나만의 도장이 생긴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 자, 당장 가서 하나 골라 보자꾸나.”
도장집은 아주 작고 좁은 곳이었지만, 그 안에는 놀랄 만큼 많은 도장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빨갛고 반짝이는 것, 검은색으로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것, 투명한 플라스틱 안에 소라나 꽃이 들어 있는 것 등, 종류나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 노랗고 말갛게 비치는 것을 골랐다. 그것은 뚜껑까지 달려 있어 아주 좋아 보였다.
“거기다가 네 이름을 새기면 네 도장이 되는 거야. 어디 뚜껑을 열어보렴.”
아빠의 말씀에 나는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을 애써 진정 시키며, 도장의 뚜껑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뚜껑은 잘 빠지지 않았다.
“뚜껑이 잘 안 빠져요!”
“힘껏 빼봐. 원래 도장 뚜껑은 잘 안 빠지는 거야.”
나는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자 뚜껑은 뻥 하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빠져 나왔다.
‘일부러 뚜껑이 잘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이렇게 매번 도장을 쓸 때마다 힘들게 뚜껑을 빼야하는 것은 너무 불편해.’
나는 도장집을 나와 길을 걷는 내내 도장 뚜껑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내 도장을 만든다는 생각에 그저 신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좀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도장 뚜껑이 불편한 채라면, 내 도장을 갖는다 해도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도장 뚜껑을 쓰기 좋게 바꿀 수는 없을까?’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 들었다.
‘평상시에는 뚜껑이 잘 빠지지 않다가 필요할 때는 쉽게 뺄 수 있는 방법... 그래 맞아! 병의 뚜껑처럼 나사식으로 만드는 거야!’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지금의 보통 도장처럼 잡아 빼는 것이 아니라 돌려 빼는 방법이라면 좀더 편리하게 도장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장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도구란다. 그래서 옛날부터 임금들은 옥새를 가지고 문서에 찍음으로 자신의 권위를 나타냈었지.”
아빠가 도장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나의 특별한 도장은 옥새보다 더 귀중한 것일 거야. 무엇보다, 나의 귀중한 아이디어가 들어 있으니까!’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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