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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되는 옷장
“옷 보관 하는 법?”
진석이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일을 봤다는 식이었다.
“이런 책을 뭐 하러 읽는 거냐? 너 세탁소라도 차릴 작정이야?”
진석이는 황소처럼 눈을 껌벅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세탁소는 무슨 세탁소냐? 그냥 필요하니까 알아본 거지.”
나는 멋 적게 웃으며 슬그머니 책을 치웠다. 진석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책을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냐? 좀 같이 알자. 홍식이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네가 계집애가 되려나 보다고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다.”
진석의 말에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약삭빠른 홍식이 녀석에게 책 읽는 광경을 들킨 것이 실수였다. 그 녀석이라면 과장된 헛소문을 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아주 기분 나쁜 소문으로 나타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어휴! 옷에 관한 책은 여자만 읽는 거니? 어째 다들 그러냐?”
나는 화가 나서 마구 퍼부었다.
“참내, 언제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냐? 홍식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속 시원히 얘기 좀 해봐.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거야?”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진석이라면 믿을 만한 친구이고, 어차피 숨길 일은 아니니 사실을 말하기로 작정했다.
“장마 때문에... 너희 엄마는 걱정 안하시니? 우리 엄마는 매일 걱정이시다. 습기랑 곰팡이 때문에 비싼 옷 다 버리겠다고.”
보름이 넘도록 계속 되는 장마 덕분에 온 집안 식구들의 기분이 엉망이었다. 아빠는 빗길 운전에 신경을 너무 써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고 형은 야구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큰 걱정 중이었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아주 신경이 날카로워 계셨다.
젖은 빨래는 마르질 않고, 그나마 말라있던 옷들도 모두 습기를 먹어 눅눅해져 있었다. 옷뿐만 아니라 이불, 요, 베개에 이르기까지 축축한 기운이 점령하였다. 이런 상태이니 엄마의 일은 끊이지 않았고, 더불어 엄마의 얼굴에서 웃는 모습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결정적으로 엄마를 슬프게 한 것은 옷장을 가득 점령한 곰팡이였다.
“어머나 세상에, 이 비싼 양복에... 아웃 난 몰라!”
엄마는 황급히 옷장을 뒤집어엎다시피 하여 대청소를 했지만, 벌써 여러 벌의 옷을 버린 후였다.
엄마가 계속 저기압의 상태이니, 내 기분도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곰팡이로 피해를 입은 옷 중에는, 내가 아끼는 밤색 잠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급기야는 내가 비상대책을 마련하기로 작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구나.”
진석이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통해 옷 보관법을 알아봤지. 옷은 통풍이 잘 되고 습기가 적은 곳에 보관해야 한다더군. 그래야 곰팡이나 각종 벌레의 피해를 입지 않는데.”
“그럼 너희 옷장은 통풍이 잘 안되는 셈이구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찰한 결과 옷장은 통풍구가 턱없이 부족 했던 것이다.
“그래서 통풍시설을 만들려고 해. 지금 있는 통풍구를 이용해서 좀더 쓸모 있게 만들 수는 없을까?”
나의 물음에 진석이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했다.
한참이 지나서, 진석이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는 초조해져서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진석이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들어 천정을 가리켰다.
“뭔데?”
나는 진석이의 손을 쫓아 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 곳에는 환풍기만 열심히 돌아가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환풍기? 옷장에 환풍기를 달자고?”
“그래. 통풍구에 작은 환풍기를 다는 거야. 그러면 옷장의 공기가 순환될 것 아니야?”
진석이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맞아! 네 생각이 옳다. 그러면 정말 통풍 만점의 옷장이 되겠구나!”
너무나 기뻐서 팔짝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것으로 아주 멋진 효도를 하게 됐구나?”
진석이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유난히 멋져 보였다.
“좋아!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너에게 내가 특별히 떡볶이를 사주마.”
“좋지! 기왕이면 팥빙수도 사주라.”
우리는 정답게 손을 잡았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그림 : 김 민 재(만화가, http : //www.coolmorni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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