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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의 스위치
하늘이 몹시 맑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자꾸만 두터운 옷을 떨쳐버리고 밖으로만 나가고 싶은 것을 보면 봄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봄이라고 할 수 없는 쌀쌀한 날씨였다.
모처럼 온 가족이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아름이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가족 나들이라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빛이는 무슨 궁리를 하는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눈동자를 굴리더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빛이가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는 것 아니냐?”
아빠가 아름이를 쳐다보며 근심스런 눈빛으로 물으셨다.
그러자 아름이는 ‘쿡!’ 하며 콧소리로 웃었다.
“빛이가 눈동자 굴리는 것을 못 보셨어요?”
“그럼, 뭔가 연구 중이라는 소리냐?”
“틀림없어요, 아빠.”
“기대가 되는 걸?”
아름이는 얼른 말을 돌렸다.
“날씨도 화창한데 가족 나들이라도 가요, 아빠.”
“가족 나들이?”
아빠가 얼른 엄마를 돌아보자 엄마는 재빠르게 한두 번 눈을 깜박거리면서 보일 듯 말 듯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난처해진 아빠는 핑곗거리라도 찾으려는 듯이 할아버지께 여쭤봤다.
“아버님, 어머님은 어떠세요? 다른 계획 없으세요?”
“너희들끼리 다녀오너라. 우린 모처럼 뒷산 약수터에 가리고 했다. 약수도 떠오고 바람도 쐴 겸...”
아빠는 일단 안심을 하는 표정이 되더니 이번에는 삼촌과 고모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어떠냐?”
“전 모처럼 잠이나 실컷 자렵니다.”
삼촌은 물을 마시고 나서 일어서더니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듯 늘 바쁜 삼촌은 커다란 사건이 터지면 아예 집에는 들어오지도 못한 채 취재하러 뛰어다녔고, 집에 돌아와서도 안심을 못했다.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가릴 것 없이 신문사에서 걸핏하면 전화로 호출을 해대는 것이었다. 아름이는 막내 삼촌을 보면서 나라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전달해주기위해서 밤낮없이 고생하는 신문기자들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모처럼 한가한 모양이었다.
아빠는 막내 고모를 쳐다봤다.
“전 친구들하고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요.”
“흥!”
화가 난 아름이가 화풀이라도 하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이라구?”
“그래, 고모. 고모도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 중계방송 봤지?”
“뚱딴지같이 청문회는 왜?”
“봤어, 안 봤어?”
“봤다, 왜?”
“그럼,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의 필수품이 뭔지 알아?”
“필수품? 그런 게 다 잇었니?”
“오리발이야, 오리발.”
“뭐라구? 그럼 내가 지금 오리발을 내민다는 거니?”
“그럼 아니야? 데이트하러 가면서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는...”
“그래, 이 짱구야. 나도 노처녀 소리 듣기 전에 시집가려고 데이트하러 간다. 이제 시원하니?”
고모는 아름이의 짱구 머리에 알밤을 한 대 먹였다. 아름이의 별명은 ‘짱구’와 ‘로봇’ 두 가지였는데, 고모는 짱구란 별명을 즐겨 불렀다. 이럴 때는 도저히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고모였다. 이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고, 잠시 후에는 뒷산 약수터에 간다면서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집을 나서셨다. 아빠가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하고 난 뒤 아름이를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보다시피 가족 나들이는 안 되겠구나, 아름아.”
“아빠, 엄마가 원하시던 대도 된 거죠?”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렇다.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다만, 사실은 엄마랑 한 달 전부터 약속한 게 있거든.”
“그게 뭔데요?”
“모처럼 테니스를 하러 가기로 했단다. 너도 같이 가자꾸나.”
“사양하겠습니다, 아빠. 전 옆집 고물장수한테나 가서 놀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짱구야.”
아름이는 고모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빛이 방으로 갔다. 빛이는 발명일지를 꺼내놓고 뭔가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잘 되어가니?”
“잘 안 풀려, 오빠.”
“뭔데?”
“감전 안 되는 콘센트.”
그렇게 말하면서 빛이는 지난 일요일에 큰고모네 집에 놀러갔었을 때의 일을 설명했다.
아름이와 빛이에게는 함께 사는 막내 삼촌과 고모 말고, 결혼해서 나가 사는 작은삼촌과 큰고모가 있었다. 그러니까 아빠의 형제는 모두 3남2녀였고 그중에서 아빠가 장남이었다. 큰고모네 집에 갔을 때 고모가 이런 말을 했다.
“저번에는 지수가 콘센트 구멍에 젓가락을 찔러 넣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단다. 듣자하니 너희들의 발명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던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니?”
지수는 세 살짜리 사내아니였는데, 고모네는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 지원이와 아이가 둘이었다. 빛이는 즉석에서 자기가 해보겠노라고 약속을 했고, 지금 골똘히 생각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잘 안 풀리면 발명 퀴즈 놀이나 하면서 좀 쉬었다 하지 그러니?”
아름이가 이렇게 말하자 빛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생글 웃었다. 어떤 발명 목표가 생기면 온 신경을 집중해서 끈덕지게 매달리는 것이 빛이의 장점 중의 하나였다.
“그럴까? 그 대신 이번에는 내가 퀴즈를 낼게, 오빠.”
“좋아!”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면 엉덩이가 더러워지지? 옷도 상하고 말야. 그러다 보니까 미끄럼만 탔다 하면 엄마한테 꾸증을 듣는데, 엉덩이가 더러워지지 않는 미끄럼틀을 만들 방법은 없을까?”
“힌트는 없니?”
“나도 막막하기만 해.”
아름이는 턱을 손으로 받친 채 머릿속으로 미끄럼틀을 그리며 천장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커다란 눈을 꿈뻑 거리면서 생각을 짜내기 시작했고, 빛이는 물론 그 특유의 눈동자 굴리기에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생각이 난 모양인지 갑자기 아름이가 무릎을 철썩 치는 바람에 빛이는 깜짝 놀랐다.
“콘베이어 시스템이야! 그걸 응용하면 되는 거야!”
“물건을 연속적으로 읾길 때 쓰는 벨트 콘베이어 말야?”
“그래! 미끄럼틀은 시멘트나 철판으로 만들어진 고정 틀에 엉덩이가 마찰되면서 체중에 의해 미끌어지잖아? 그러니까 엉덩이가 더럽혀졌거든.”
“그런데?”
“미끄럼틀 위와 아래에 롤러를 장치하고, 그 롤러에 콘베이어 시스템을 으용한 천으로 만든 벨트를 거는 거야.”
“그것 멋진데? 그러니까 벨트 위에 올라앉아 있기만 하면 롤러가 돌면서 그대로 내려간다는 말이지? 역시 오빠의 짱구 머리는 알아줘야 해.”
아름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빛이는 미끄럼틀에 관한 아이디어의 설명과 그림을 즉시 발명일지에 기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름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물었다.
“고물장수한테 놀러가지 않을래?”
“해산이 오빠한테? 싫어, 오빠나 다녀와. 난 감전 되지 않는 콘센트나 구상하고 있을래.”
아름이는 혼자서 밖으로 나왔다. 식구들은 벌써 다들 나갔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아름이와 같은 반이면서 발명반 활동도 함께 하고 있는 옆진 해산이의 별명은 ‘고물장수’였다. 개구쟁이이긴 해도 장차 꿈이 ‘발명가 군인’인 그는 망가진 물건은 모조리 자기 방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불은 별명이 고물장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책상 서랍에는 부서진 시계며 라디오, 소형 모터, 전선, 건전지, 스위치, 못, 볼트, 너트, 와셔, 드라이버 등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게다가 무슨 물건이든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고장 낸 시계와 라디오, 다리미, 밥솥 등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까 형인 해준이 한테 수시로 알밤세게를 받았다.
그런 해준이와 해산이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바닥에서 무언가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름이가 들어오는 것도 모른 채 그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못이며 뻰찌, 망치, 나무토막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거 오나가나 발명가들뿐이니 우리나라 장래도 탄탄대로구만?”
‘탄탄대로’란 평평하고 넓은 길을 이르는 말로, 장래가 아무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없이 수월함을 의미한다. 그런 아름이의 말에 해산이가 머리를 들고 쳐다보더니 깜짝 반가워했다.
“짱구 왔구나? 마침 잘 왔다.”
해준이도 인사 대신 안경 너머로 빙그레 웃어보였다. 아름이는 그들 옆에 앉아서 발명일지의 그림을 들여다봤다.
“이게 뭐야? 뻰찌 같은데?”
“맞았어. 못 박는 뻰찌야.”
“못 박는 뻰찌? 아니, 그걸 여태까지 만지고 있는 거야?”
“발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끈기 아니냐? 에디슨도 ‘천재란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이라고 했잖아?”
해산이가 발명하려는 ‘못 박는 뻰찌’는 꽤 여러 주일 전부터 만지던 것이었는데 여기에는 조그만 사건이 관련되어 있었다. 어느 날 해산이 아버지가 벽에 액자를 걸기 위해서 콘크리트 못을 박다가 손가라가과 이마를 다쳤다. 못이 잘 안들어가자 망치로 세게 내려치니까, 일반 못과는 달리 단단한 콘크리트 못의 중간이 부러졌다. 그러면서 망치에 손가락이 다쳤고, 부러진 못 토막이 튀어 오르면서 이마에 상처를 낸 것이었다.
해산이 아버지는 신경질을 내면서 못 박기를 그만둬버렸고, 그러자 해준이가 집 짓는 아저씨들이 하는 것을 본 따서 뻰찌로 못을 물게 해서 고정시킨 뒤 겨우 벽에 박았다. 그렇게 하니까 튀거나 구부러지지는 않았지만 못이 삐뚜름하게 박아졌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두 형제는 못 박는 뻰찌를 구상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고물장수 해산이가 방바닥에 있던 뻰찌를 보여주었다.
아름이는 뻰찌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물리는 부분의 양쪽에 반원형의 홈이 있었는데 뻰찌를 맞물리게 쥐었더니 그곳에는 못이 들어감직한 조그만 구멍이 생기는 것이었다.
“우리가 철공소에 가서 만든 거야. 거기에다 못을 물리고 박으면 휘거나 튀어오르지 않고, 또 삐뚜름하게 박히지도 않는다구.”
해산이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그럴 듯한데? 그럼 완성된 거잖아?”
“근데 그게 아니야.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그걸 보완하기 위해 지금 설께를 하고 있는 중이야.”
“문제가 뭔데?”
“내가 설명해주지.”
이번에는 해준이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우선 구멍을 한 개만 만들어 놓으니까 못의 굵기에 따라 대처할 수가 없고, 그 다음에 뻰찌의 두께보다 작은 못을 박을 때는 아주 곤란해. 또한 손잡이가 똑바르니까 못을 박을 때 손이 벽에 닿아서 다칠 우려도 있고.”
아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그리던 설게도를 들여다봤다. 그것은 요즘 쓰이고 있는 뻰찌와는 전혀 달랐다. 우선 물리는 곳이 길고 끝으로 갈수록 납작해지는 형태였다. 그리고 안쪽에서부터 굵은 구멍과 중간 크기 구멍, 가는 구멍 등 세 개의 구멍을 차례로 만들어서 못의 굵기에 대처했다.
그러다 보니까 못의 길이에 따르는 문제점도 자연히 해결된 셈이었다. 즉, 맨 안쪽의 구멍은 굴고 긴 못을 사용할 때 쓰고, 그것보다 구멍의 크기와 뻰찌의 두께가 작은 가운데의 것은 중간 크기의 못을 박을 때 이용하며, 맨 끝에 있는 납작하고 작은 구멍에는 소형 못을 다룰 때 쓰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손잡이도 이발관에서 쓰는 머리 깍는 기계처럼 위로 휘어 올라와 있어서 벽에 손이 닿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설계상으로는 완벽한데?”
“그렇지? 이걸 만들어서 특허를 낼 생각이야. 가시철사 울타리를 발명한 대장장이 아들 조셉처럼 벼락부자가 될지 누가 알아?”
고물장수 해산이가 허영에 들떠 진짜 고물장수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름이는 해산이의 그 우스꽝스런 표정과 조셉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비교해 봤다.
미국의 가난한 대장장이 아들인 조셉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목장에서 양치기로 일했다. 그런데 양들은 걸핏하면 울타리를 벗어나서 남의 농작물을 해치기 일쑤였다. 주인한테 매일 꾸중을 듣던 조셉은 울타리를 자세히 살펴봤다. 울타리는 말뚝을 듬성듬성 박아놓고 그 사이에 철사를 빨랫줄처럼 연결한 엉성한 것이었다. 양들은 이 울타리를 쉽게 넘어 다녔는데, 철사 울타리 대신 장미덩굴이 우거진 쪽으로는 아예 갈 생각조차 안하는 것이었다.
“철사도 장미덩굴처럼 가시가 달렸으면 양들이 꼼짝을 못할 텐데... 가만 있자! 그렇지! 가시 달린 철사를 만들면 되겠구나!”
이렇게 해서 대장장이인 아버지와 함께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가시철망을 발명하게 되었고, 그것은 담장과 울타리와 군대의 철조망용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가시철사로 특허를 출원한 조셉은 특허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엄청난 특허권료와 생산 이익금을 거둬들였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던지, 미국의 공인 회계사 11명이 1년동안 계산을 해도 정리를 다 못 할 정도의 액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듯한 아이디어로 엄청난 돈을 번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발명반 선생님도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발명이라고 하면 무언가 크고 대단한 것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식으로 연구하다보면 십중팔구는 중간에서 좌절하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 실제 생활에 필요한 것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하면 그것이 곧 발명가가 되는 가장 좋은 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해산이 형제의 못 박는 뻰찌는 조금 문제가 있는 듯했다. 우선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제품을 만들어보는 일 자체부터 많은 벽이 있을 듯했다. 고물장수 해산이는 조셉의 꿈에만 취해 있었지만, 해준이는 그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름이는 그 일은 모른 척하고 해준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형, 궁금한 게 있는데 형은 특허권과 실용신안권, 의장권, 상표권에 대해서 좀 알아?”
“알지. 내가 설명해 줄까?”
“부탁해, 형.”
해준이는 해산이와 아름이를 앉혀놓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특허제도의 역사라든가 복잡한 특허법에 관한 것은 아직 알 필요가 없으니까, 간단히 설명해 줄게. 우선 특허를 신청할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은 발명이야. 그럼 발명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니?”
아름이가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없던 어떤 물건이나 방법을 기술과 자연의 법칙을 응용하여 새로 만들어내는 것 아냐?”
“맞았어. 그러면서도 인류에게 필요한 것, 또 인류를 만족시키는 것 가운데서도 아주 정도가 높은 것을 말하지. 예를 들어서, 어떤 물체가 급속도로 돌아가면 중심에서 멀어져가려는 원심력이 생기지? 그건 하나의 자연의 법칙이고, 이 원리를 알아내는 일은 ‘발견’이지. 그런데 이 원리를 이용해서 빨래 짜는 기계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바로 ‘발명’이야.
그럼 특허와 실용신안과 의장과 상표는 어떻게 다를까? 전화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할게. 1876년 영국의 벨이란 사람이 처음으로 전화기를 만들었지? 이처럼 전자를 응용해서 처음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낸 것을 ‘발명’이라고 하는데, 이럴 경우에 ‘특허권’을 주고 그 기간은 15년이야.
이 전화기가 처음에 나올 때는 송화기와 수화기가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었거든. 이것을 어떤 사람이 오늘날의 전화기처럼 숭수화기가 하나로 된 전화기를 고안했는데, 이럴 경우에 ‘실용신안권’을 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발명된 어던 물건의 모양이나 구조나 결함에 대한 고안으로 실용성이 있는 새로운 것에 허가되는, 특허보다는 한 단게아래의 것이지. 실용신안권의 기간은 10년이야.
이렇게 개선된 전화기를 탁삭용이나 가정용, 네모꼴, 원형 등 실용상 편리한 대로 만든 여러 가지의 전화기가 있잖아? 이 경우에는 기간이 8년인 ‘의장권’을 주는 거야. 의장권과 실용신안권이 좀 혼동되지?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실용신안권은 실용성 중심이고, 의장권은 모양 중심이라고 말야. 에를 하나 더 들면, 이미 발명된 연필에 지우개를 붙이면 실용성이 있으니까 실용신안권을 주게 되지. 그러나 지우개의 모양을 동그라미나 네모나 동물의 머리등의 형태로 바꾼다면 의장권이 주어지는 거야.
그리고 기간은 10년이지만, 10년씩 연장할 수 있는 ‘상표’는 그상품의 고유 마크야. 물론 ‘상호’는 그 상품을 만든 회사 이름을 가리키지. 이젠 이해가 가니?“
“그럼 그 권한을 얻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해산이가 물었다.
“그 기간 동안 물건을 독점으로 생산하고 사용할 수가 있는 거지. 만약에 그 기간 동안에 다른 사람이 비슷하거나 똑같이 생긴 물건을 만들어 팔거나, 또 등록된 상표와 똑같거나 비슷한 상표를 사용하면 처벌을 받고 손해배상을 해주게 되어 있어. 물론 자기가 직접 회사를 만들 수 없을 경우에는 그 권한을 팔거나, 일정액의 사용료를 받고 권한을 빌려줄 수도 있어. 그 권한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용료인 ‘로열티’라는 게 바로 그거야. 그뿐이 아니라 지난 1980년 5월에 우리나라도 ‘공업 소유권 보호 동맹 조약국 회의’에 가입했기 때문에, 이 가맹국끼리는 우리나라에서처럼 특허 출원을 할 수 있는 보호도 받을 수있다구.”
“우와, 발명만 잘 하면 그야말로 황금의 알이군!”
아름이는 새삼스럽게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해준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안경을 밀어 올렸다.
“물론이지. 황금의 알이요 보물섬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구. 지난 80년 5월 이후에 우리나라 회사들이 가맹국의 특허권을 사용하는 데 지불한 로열티를 상상만 해봐라. 발명이야말로 천연자원보다 더 값진 것이란 생각이 안드니? 그래서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미국이 이처럼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천연자원의 덕택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민모두가 창의력과 연구심을 발휘하여 캐낸 아이디어의 개척이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는 거야.”
“그럼 특허 신청은 어디서 하지?”
“그건 특허청에서 한단다.”
아름이는 고물장수의 집을 나오면서 가족 나들이를 간 것보다 훨씬 유익한 하루였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아름이는 발명반에서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구나 한국인은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두뇌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과학의 발달이 뒤졌습니까?”
그때 선생님은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해 주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말이 있지? 우리 조상들이 생각한 계급의 순서다. 즉 벼슬하는 선비(사.士)가 으뜸이요, 농사 짓는 농부(농.農)가 그 다음이며, 무언가를 만드는 장인(공.工)과 장사를 하는 상인(상.商)을 천하게여긴 것이지. 이런 뿌리 깊은 의식이 많은 작용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모든 국민들이 과학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또 미래의 황금알을 낳을 여러분 같은 꿈나무가 많아서 나는 안심이다. 여러분들은 우리나라를 선진 과학기술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게 해줄 꿈나무들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보니 삼촌은 2층 자기 방에서 세상모른 채 잠들어 있었고, 빛이는 전선과 플러그, 콘센트와 드라이버와 가위, 종이 등이 너저분하게 널린 방안에 여전히 틀어 박혀서 끙끙대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는 아직 안 돌아오신 모양이었다.
“별다른 진전이 없니, 빛이야?‘
“오늘은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도통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아.”
“장마다 망둥이 날까?”
이 말은 항상 자기에게 알맞은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인데 그 말을 듣자 빛이는 얼굴을 들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얗게 흘겨보는 빛이의 눈빛을 피해 천장을 쳐다보던 아름이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너 여태 불을 켜놓고 있었니? 너처럼 알뜰한 여성 발명가가 웬일이야?”
“미안해, 오빠. 감전 안 되는 콘센트 생각만 하느라고 깜박 잊었지 뭐야. 그쪽에 있는 스위치 좀 눌러... 가만 있어봐, 오빠! 그래, 맞았어! 스위치야!”
빛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면서 지난번에 그릇이 미끌어지지 않는 고무장갑 때문에 욕실에서 뛰어나올 때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빛이는 그때 식구들로부터 ‘아르키메데스’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었었다.
“왜 그러니, 아르키메데스?”
“이제야 생각났어, 오빠! 드디어 감전 안 되는 콘센트를 발명하게 됐다구! 야호!”
그런 소란이 없었다. 멀뚱멀뚱한 채 서 있는 아름이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는가 하면, 두 손을 꼬옥 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제발, 진정 좀 해라. 스위치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이리 와봐, 오빠.”
빛이는 아름이를 잡아당겨 발명일지 앞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해 주었다.
“텔레비전이라든가 시계, 다리미, 밭솥, 냉장고 등을 쓰기 위해서 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는 대개 늘 전기가 흐르고 있잖아? 플러그를 꽂은 채 내버려두기가 일쑤거든. 그래서 애기들이 젓가락이나 손가락을 콘센트의 플러그 구멍에 끼워 넣다가 감전 사고를 일으키고 말야.”
“그렇지! 그래서 네가 여태 끙끙대면서 연구를 한 것아냐? 그것까지는 잘 아니까, 발명했다는 그 다음 애기를 들어보자구.”
“간단해. 콘센트와 콘센트의 플러그 사이에서 스위치를 다는 거야. 그래서 플러그를 쓸 때는 스위치를 연결하고, 쓴 다음에는 스위치를 끄면 깜박 잊고 플러그를 안 뽑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너의 인스피레이션은 대단하구나!”
“인스피레이션?”
“영감 말야.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
빛이는 여태 끙끙대던 얼굴에 한껏 밝은 웃음을 띠고 아름이를 쳐다봤다. 그 귀여운 볼우물이 깊숙하게 패이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빨리 고모한테 전화해서 알려줘야지. 그리고 로열티를 톡톡히 받아내라구.”
“로열티? 그건 또 뭐야?”
“그런 게 있어. 전화 건 다음에 가르쳐줄게.”
“알았어, 오빠1”
아르키메데스 빛이는 진짜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뛰어나올 때처럼 거실에 있는 전화 쪽으로 달려갔다.
=출처 : 발명하는 어린이들, 글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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