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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연중의 발명동화

본 코너에 소개된 모든 글의 저작권은 저자인 왕연중 선생님(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wangyj39@dreamwiz.com)에게 있습니다.
저자의 허락없이 무단전재나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제목 : 발명가 겸 사업가      

   발명가 겸 사업가

   실용성 없는 신호 장치
  전기실험을 해 본 사람들 사이에서의, 전기를 이용하여 멀리 떨어진 곳에 빠르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검토되어 온 일이었습니다.
 ‘철사를 양쪽에 쳐 놓고 한쪽에서 전류를 흐르게 하고 다른 한쪽에서 그 전기가 온 것을 알도록 장치해 놓으면,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발명에 취미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전류가 흘러온 것을 알 수 있게 만들까? 하는 것이 첫 번째 어려움이었습니다.
  전지가 발명되기 전의 사람들은, 검전기(전기가 있나 없나를 조사하는 장치)를 사용하거나 보내 온 전기가 가벼운 나무 심(코르크 조각 등)을 끌어당기는 장치를 만들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도저히 현실화 되지 않았습니다.
전지가 발명된 뒤에는 보내 온 전류로 물을 전기 분해하고, 그때 나오는 거품으로 전기가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사람도 있었으나, 이것 역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은 전류에 자석을 움직이는 성질이 있음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학자들이 이것을 이용하여 신호를 전달할 것을 연구했습니다.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고 있던 이 무렵에는 장사를 하기위해서도 먼 곳에 있는 사람과의 빠르고 정확한 연락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또 그 무렵에는 철도산업도 발달하기 시작해 기차를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 역과 역 사이를 연락하는 빠른 통신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전쟁 때에는 더욱 빠른 통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1750년경에 정전기를 일으키는 기전기의 연구가 활발해지자, 이것을 이용하여 먼 곳에 신호를 보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744년에는, 르사지가 24개의 전선을 나란히 쳐놓고 각 전선 끝에 검전기를 달아 놓아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 장치는 전선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검전기 속은 작은 공이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4개의 전선에 알파벳의 글자를 표시해 둔다면 가령 A라는 전선에 전류를 흐르게 하였을 때에는 전선의 다른 쪽 끝에서 A검전기의 공이 움직이게 되어 A라는 신호가 보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치로 전류를 흐르게 하려면 라이든 병(전기의 도체에 많은 전기량을 적시키는 장치의 한 가지)  저축한 전기를 전선에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까다로워 실제로 사용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독일의 생물학자 죈메링은, 르사지의 전신기와 마찬가지로 36개의 전선을 나란히 쳐놓고 한쪽에는 알파벳과 숫자의 기호를 붙이고, 전선의 다른 쪽 끝에 신호를 보내어 그것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단지 르사지가 전류를 흐르게 하는 데 라이든 병의 정전기를 사용한 것과는 달리 죈메링은 볼타 전지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르사지는 신호를 받는 쪽 끝에 검전기를 달았으나, 죈메링은 신호를 보내는 수신 부분에 소금물을 넣은 유리관을 두고 그 속에 기호나 문자를 표시한 막대기를 세워 두었습니다.
   그 장치에다 전류를 흐르게 하면, 소금물이 전기 분해되어 부글부글 거품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기호가 쓰인 막대를 통해 곧 보내온 신호를 알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1809년, 죈메링의 이 실험은 독일의 뭔헨에서 실시되었으나 이것 역시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신장치는 당시 막 발명된 볼타 전지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전신기의 발명이나 개량은 전기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전기가 가지는 여러 성질이 밝혀짐에 따라 전시기도 여러 가지로 개량되어 갔습니다.
   덴마크의 과학자 외르스텟이 1820년 전류의 자기작용(자석의 상호작용 또는 자석과 전류와의 작용 등, 자기력의 근원이 되는 것)을 발견하자 프랑스의 앙페르는 이 원리를 전신기에 이용했습니다. 앙페르는 30개의 자침과 60개의 전선을 사용하여 전신기를 만들었습니다.
  또 독일의 페히너도 24개의 자침과 48개의 전선을 써서 새로운 전신기를 발명했으나, 앙페르의 전신기와 함께 장치가 너무 복잡해 아직도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외르스텟이나 페히너가 전신기를 연구하고 있던 그 무렵에, 러시아의 실링 역시 전류가 자침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를 이용한 전신기를 만들었습니다.
  원래 외교관이었던 실링은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모두 나폴레옹의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러시아 군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전신기를 발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824년 실링의 전신기는 1824년 러시아 황제 앞에서 드디어 공개되었습니다.
  그 전신기는 5개의 자침으로 신호가 전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5개의 자침은 전류가 보내지면 전류의 방향에 따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5개의 자침의 움직임을 조합하여 A,B,C...등 알파벳을 나타내게 하여 신로를 보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뒤 독일에서는 괴팅겐 대학의 유명한 수학자 가우스와 물리학자 베버가, 1833년에 대학과 천문대 사이에 전신선을 쳐놓고 같은 원리를 써서 실험을 했습니다.
  실링, 가우스, 베버 등의 전신기는, 전선을 여러 개 쳐야 하는 불편을 없앤 것은 대단한 진보였으나, 확실한 신호를 정확하게 보내는 장치로서는 별로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가우스의 제자인 사티인하일은 1838년 무렵까지 그의 스승인 가우스가 고안한 전신기를 계속 개량했습니다. 가우스의 전신기는 전류가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므로  2개의 전선이 필요했으나, 시타인하일은 어드(전선 한 끝을 땅 속에 묻는 것)를 이용하면, 한 개의 전선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전신과 라이도 등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시타인하일은 가우스의 전신기가 가지고 있는 결점을 보완했습니다, 즉 자침이 움직이는 각도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자침이 흔들리는 횟수로 기호를 구별하여 알아내는 방법을 고안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시타인하일은 종이 테이프 위에 자침이 잉크로 점을 찍어서 신호를 전달하는 인쇄식의 전신을 완성시켰던 것입니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물리학자인 와트슨과 쿠크가 1837년에 편집자 전신기를 발명했습니다. 이 전신기는 실링의 전신기처럼 5개의 자침으로 되어 있지만, 전신을 보낼 때에는 두 개의 자침이 동시에 문자판 위에 적힌 글자를 가리키게 되어 있으므로 대단히 편리하게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침을 이용한 전신기는 여러 가지로 발명되었지만, 시타인하일의 전신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다지 정확한 것이 못 되었습니다.

  전자석 실험에 힌트를 얻어 연구 결심
 그 무렵 미국에서는 유럽의 과학자들과는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전신기를 생각하고 있던 모스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래 화가였던 모수는 20세가 되던 해에 영국으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하고, 4년 뒤에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초상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전신기의 발명을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유럽을 건너간 1832년, 모스가 그림의 조사여행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여행은 오늘날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행과 달라서 향해에 많은 시일이 걸렸습니다. 배를 이용한 승객들은 지루한 항해를 잊기 위해 매일같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스는 한 의사로부터 파리에서 복 왔다는 신기한 전기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또한 파리에서 사온 전자석으로 모스에게 몇 가지 실험을 하여 보여 주었으며, ‘전기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전해진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의사의 얘기는 무척 감동적이어서, 젊은 모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스는 언뜻 ‘전기를 사용하면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모스는 전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자기의 생각이 세계 최초의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스는 당장 선실 안에서 그의 스케치북에 여러 가지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모스는 전신기의 발명에 빠져들어 어느새 손을 떼려야 뗄 수도 없을 만큼 깊은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뉴욕에 돌아와서도 모스는 전시기에 대한 생각들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모스는 미국에서의 화가 생활 수입이 그리 좋지 않아 뉴욕 대학에서 그림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그 대학에서 전기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 게일 교수를 알게 됐으며, 특히 게일 교수를 통해 미국에서 첫째가는 전기학자 헨리를 알게 된 것이 그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전기에 관한 여러 가지를 헨리를 통헤서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헨리는 강력한 전자석을 발명한 사람으로 그 또한 전신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류를 약하지 않게 해서 먼 곳까지 보내는 방법을 반쯤은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명하여 돈을 벌어보려는 생각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던 헨리는 모스의 이야기를 듣자, 자기가 그때까지 연구해 온 결과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헨리를 만날 당시 모스는 전선을 통하여 신호를 보내는데 까지는 성공을 했으나, 그 장치로는 거리가 조금만 멀면 철사의 저항이 커지면서 전류가 약해져 신호를 보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헨리의 도움을 받은 모스는, 단속(끊겼다, 흘렀다 하는)되는 전류를 먼 곳까지 보낼 수 있는 릴레이라는 장치를 발명하게 됐습니다. 이 장치는 계전기라고도 하는데, 약한전류를 단속시킴으로써 강한 전류가 수신기 쪽에서 단속되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1838년에는 벨이라는 사람의 협력을 얻어 ‘톤( ●)’과 ‘쓰( - )’로 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고안하여 전신기를 더욱 개량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두 발명은 이제까지의 전신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발명이었습니다. 모스의 전신기에서는 이제까지의 자침 대신에 전자석이 사용되었습니다. 전신을 치면 수신기에 감겨 있는 테이프 위에 전자석의 작용으로 ‘ ●’ 이라든지 ‘ - ’라든지 하는 기호가 쓰이는 것입니다. 다음의 모스의 전신 부호와 같이, ‘ ●-는  A’, ‘ - ● ● ●은 B’, ‘ - ●- ●은 D’...처럼 하여 수신된 신호의 뜻을 곧 알게 되며,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가 새로 발명한 계전기를 이용하여 신호를 보낼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스가 이런 발명을 이룩하기까지는 숱한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발명에 열중하다 보니 자연히 그림 그리는 일을 제쳐 놓게 되었고, 그런 날이 계속됨에 따라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그날그날 식사할 돈도 없어서 굶기가 일쑤였답니다.

  전신 개통 사업으로도 성공  
  전신기의 발명이 완성되자 그는 곧 특허를 얻어 길이 16킬로미터쯤 되는 전선을 치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원과 유명한 과학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자기의 전신을 실험해 보였습니다. 자기가 발명한 전신을 실용에 옮기려면 많은 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긴 전선을 끌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 국회는 그의 부탁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전신기의 발명에 성공하고 특허까지 얻었음에도, 가난한 생활은 여전히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헨리 등이 노력한 끝에 그이 전신기도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1824년에 최후의 실험 비용으로서 3만 달러를 지급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볼티모어에서 워싱턴까지 약 60킬로미터 거리에 전선을 치고, 1844년 5월 24일 처음으로 전신이 교환되었습니다.
  이 전신은 개통된 지 이틀 만에 그 위력을 과시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그날 볼티모어에서 열린 민주당 대회에서, ‘부통령 후보자에 사이러스 라이트 씨를 추천한다.’ 는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대표가 급히 워싱턴에 가서 본인에게 알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표가 대회장을 출발하기도 전에, 뜻하지 않은 엉뚱한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그것은 ‘부통령 후보자 추천을 사양함.’ 이 라는 워싱턴의 라이트 씨로부터의 연락이었습니다. 대회의 결의가 즉시 전신으로 보내져, 워싱턴의 전신원이 그것을 라이트 씨에게 전하고 라이트 씨의 화답을 다시 전신을 이용하여 볼티모어로 보내 온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화답이 빠른 것에 놀란 나머지, 그 사실을 도저히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임이 밝혀졌고 사람들은 너무나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날의 경이적인 뉴스는 대대적으로 신문에 보도되었고, 모스는 단번에 유명해졌습니다. 마침내 모스가 전신기 발명에 대한 보상을 받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여전히 그 특허를 사 주지 않았지만, 전신기 발명의 장래성을 크게 본 어느 자본가가 자금을 투자해 주었습니다. 그는 곧 전신 회사를 설립하고 계속 규모를 확대하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갔습니다.
   처음에 한낱 화가에 지나지 않았던 모스는 발명가로서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헨리, 벨, 게일 등이 진심으로 협력해주는 모든 것들을 착실히 공부하고 또 잘 종합하여, 그것을 실용적인 단계에까지 끌어올려 사업으로서 성공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가장 큰 공적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U1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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