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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 발명왕(8)
진정한 사랑
우리는 가끔 얼굴이 오목오목하게 얽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을 곰보라고 하는데, 이는 마마라고도 하는 전염력이 아주 강한 악성 전염병인 천연두를 앓고 목숨은 건졌으나, 온몸에 생긴 부스럼이 아물면서 생긴 흉터이다.
1967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천연두 근절 계획을 펼쳤다. 이 결과 1977년에 새 환자가 약간 발생했을 뿐 2년간 천연두 환자의 발생이 없었다. 그래서 WHO는 1979년 10월에 천연두가 근절됐음을 선언했는데, 그 후 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두 예방접종은 권장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무서운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몰아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의 사랑과 봉사 정신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바로 천연두의 예방법인 종두를 발견한 사람인 것이다. 소의 천연두인 우두를 사람의 피부에 접종하여 천연두를 예방함은 물론, 천연두에 대한 면역성을 갖게 하는 것이 종두법이다.
오늘날 ‘종두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두 접종법의 발견자 에드워드 제너는 1749년 영국 글로스터의 버클리에서 목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음악과 시를 사랑하였는데, 자연관찰과 채집에도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세븐 강 기슭에 자리잡은 제너의 고향 마을은 물이 풍부하고 푸른 목장과 우거진 숲이 드넓은 비옥한 땅이었다. 제너의 아버지는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새와 벌레와 식물 등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화석이나 특이한 곤충과 식물 등을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는 채집을 나갈 때는 제너를 데리고 다니면서 각종 식물과 새와 벌레의 이름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함께 곤충을 잡기도 했다.
큰형 역시 아버지처럼 목사였는데, 자연관찰에 관한 관심도 아버지 못지않았다. 집에는 형이 모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광물의 표본이 한방 가득하여서 조그만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형은 생물학과 의학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는데, 표본을 정리할 때는 늘 제너와 함께 하곤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제너는 자연스럽게 형과 아버지처럼 생물과 의학과 대자연의 신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제너에게는 더없이 다정하고,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놀아주던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6살 때였다. 제너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형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제너는 음악과 국어를 가장 좋아했다. 이 무렵 제너는 매일 아침 형과 함께 목장 근처를 산책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맑은 강줄기, 구슬처럼 맑은 이슬을 담뿍 머금고 있는 싱그러운 풀잎, 이슬 방울이 구르는 소리처럼 고운 새소리, 뿌옇게 밝아오는 하늘, 상쾌한 공기는 온몸을 가쁜하게 해주었다.
목장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우유를 짜고 있었다. 제너는 형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유 짜는 걸 보고 싶어, 형.”
“그럴까?”
제너는 우유 짜는 아가씨에게 상냥한 인사를 했다.
“안녕, 누나?”
“잘 잤니, 제너?”
젖소의 젖꼭지에서 뿜어나오는 뽀얀 젖이 통 속에 반쯤 차 있었다. 목장 아가씨는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면서 계속 젖을 짰다. 형이 물었다.
“벌써 많이 짰군요?”
“웬걸요. 오늘 아침에 여느 날보다 반도 못 짰는 걸요?”
“아니, 왜요?”
“젖소가 세 마리나 우두를 앓고 있거든요.”
옆에서 젖짜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너가 머리를 쳐들었다.
“우두? 형, 우두가 뭐야?”
“소가 앓는 마마한다.”
“아니, 소도 마마를 앓아요?”
“그럼.”
“그렇지만 곰보가 된 소는 한 마리도 못 봤는데?”
형과 목장 아가씨는 제너의 말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형은 잠시 후에 제너를 데리고 외양간으로 갔다. 그리고는 우두에 걸린 소를 가리키면서 설명해주었다.
“저기 젖 근처에 털이 없는 곳을 봐라, 제너. 작은 콩알처럼 돋아난 부스럼이 보이지? 그게 우두란다. 그렇지만 소의 우두는 사람이 마마를 앓는 것처럼 심하지 않아서 곰보는 되지 않는단다.”
제너는 어렸지만 마마(천연두)가 얼마나 무서운 전염병인지는 잘 알았다. 마을에 한번 마마가 번지면 수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그나마 살아나더라도 곰보가 되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이 병을 더욱 무서워하는 것은 그 치료법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나쁜 귀신의 짓으로 생각하고 귀신 쫓는 기도나 드리는 게 고작이었다.
(왜 이같은 병이 생기는 것일까? 천연두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데, 과연 그 치료법은 없는 것일까? 이 병을 예방할 수만 있다면 아까운 목숨을 잃거나 곰보가 되는 사람도 안 생기고, 불쌍한 젖소들도 맛있는 우유를 많이 줄 텐데….)
이날 젖소도 마마를 앓는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제너는 이때부터 의학 공부를 생각하게 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제너가 중학생이 되자 형은 자신의 ‘박물관’을 물려주었다. 제너의 재질을 인정한 것이었다. 제너는 당장 박물학자라도 된 듯이 기뻐했다. 진기한 화석과 광물, 조개껍질, 곤충, 식물 등의 표본들이 정리된 방안에서 제너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리고 틈만 나면 들녘으로 쏘다니면서 여러 가지 표본을 채집하고 관찰했다.
제너는 벌레와 풀과 새들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더없이 부드러워졌다. 또 그것들을 관찰하다보면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을 하나씩 발견할 수가 있었다.
13살 때였다. 어느 날 제너는 형과 함께 표본실에 갔다. 제너를 따라 들어가서 표본들을 살펴보던 형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이 박물관을 너한테 맡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정말 훌륭한 표본실이다.”
“고마워, 형. 근데 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이리로 오자고 했어.”
“뭔데?”
“난 의사가 되고 싶어.”
형은 제너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자연을 관찰하고 동물이나 식물을 연구하는 자세나 부드러운 마음씨를 보면 의사로서는 적당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봐도 넌 의사가 될 소질이 많더라만,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일생을 병에 걸리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연두 같은 무서운 돌림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보기 흉한 곰보가 되는 사람도 있잖아? 어떻든 병에 걸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인데, 모든 사람이 다 병에 걸리는 게 아니고 보면 반드시 병에 걸리는 원인이 있을 것이고, 또 모든 병은 치료법과 예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난 그걸 찾아내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형.”
형은 반짝이는 제너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훌륭한 생각이구나. 의사가 되려면 우선 병원 조수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내가 솔즈버리에서 외과병원을 하고 있는 의사를 아는데 주선해 주마.”
“고마워, 형.”
이렇게 해서 어렸을 때의 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13살 되던 해에 제너는 형의 주선으로 솔즈버리에 가서 병원의 조수가 되었다. 낮에는 의사의 심부름을 해주면서 의술을 배웠고, 밤에는 의학책을 읽으면서 혼자 공부했다.
어느 날 어떤 젊은 부인이 병원을 찾아왔다. 보아하니 시골 아낙네 같았는데, 얼굴에 부스럼이 돋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부인을 진찰한 의사가 말했다.
“몸에 열이 나고 발진(부스럼)이 생기는 걸 보니 천연두 같은데요? 일을 하지 말고 안정을 해야 됩니다.”
“처, 천연두라구요? 제가요?”
젊은 아낙네는 펄쩍 뛰듯이 놀랐다. 그리고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제 얼굴에 생기는 부스럼을 보고 그러시는 모양인데, 절대로 마마는 아닐 겁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장담을 할 수가 있습니까?”
“전에 우두를 앓은 적이 있거든요.”
“우두라니요?”
“소가 앓는 우두에 걸렸던 사람은 마마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모르세요, 선생님? 전 우리집 젖소가 우두에 걸렸을 때 전염되어서 앓은 적이 있거든요.”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너는 눈이 번쩍 뜨였다. 번개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우두를 앓았던 사람은 마마에 걸리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소의 우두를 사람의 몸에 옮겨주어 미리 앓게 하면 마마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다. 푸른 초원이 많은 이 지역에는 목장이 많았다. 그리고 목장에는 젖짜는 일을 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가끔 소의 젖 부근에 생기는 천연두 비슷한 부스럼이 손에 옮아 며칠씩 가볍게 앓는 일이 있었다. 신기한 일은, 이렇게 우두에 한번 걸렸던 젖소나 여자들은 다시는 우두나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제너는 목장이 있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차근차근 조사해봤다. 사람들은 시원스런 대답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진찰받으러 왔던 아낙네와 비슷한 얘기들을 했다.
한편 당시의 이 지역 의사들은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인두종두’라는 천연두 예방법을 해주었다. 이것은 사람의 피부에 상처를 조금 내고 천연두에 걸린 사람에게서 빼낸 고름이나 부스럼 딱지를 발라주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은 미리 천연두를 가볍게 앓기 때문에 진짜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해서 천연두의 병균을 옮기면 병에 걸렸다. 그리고 다행히 면역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짜 마마에 걸려서 죽거나 곰보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틀림없어! 소가 앓는 우두는 가벼운 것이니까, 우두를 앓는 소에게서 얻은 고름을 사람의 몸에 옮기면 그 자리에만 부스럼이 생기고, 그 사람은 평생 마마에 면역이 생기는 거야!)
제너는 마음 속으로 확신을 했다. 그 대신 인두종두는 너무나 위험한 방법이니까 당장에 중지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굳혔다.
(우두를 옮겨서 며칠 가볍게 앓고나면 평생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데….)
그러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그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코웃음을 쳤다. 이때부터 제너의 우두를 통한 천연두 예방법의 연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770년, 그의 나이 21살 때 제너는 본격적인 의학 공부를 위해 런던으로 갔다. 그곳에서 유명한 해부학자 존 헌터 박사에게서 외과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제너는 헌터 박사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 해오던 것을 털어놨다.
“제가 살던 지방에서는 우두에 한번 걸렸던 사람은 우두 병균이 침입하여 부스럼이 생겼던 곳에만 자국이 한두 개 날 뿐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고, 또 제가 조사해본 결과도 그렇습니다.”
“오, 그래? 그것 놀라운 일인데?”
“그렇습니다, 박사님. 그래서 우두를 앓는 소에서 얻은 고름을 사람에게 접종하면 그 자리만 곪고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참으로 훌륭한 생각일세.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생각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 법이네. 한번 마음먹은 것은 기어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충분한 실험과 연구를 해서 확실한 결과를 뽑아내야 되네. 만일 자네의 그 연구가 성공하면 일류를 위해서 아주 위대한 발견이 될거야.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하게. 무엇보다 귀중한 인간의 생명과 관계되는 일이므로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 말일세.”
“알겠습니다, 박사님. 박사님 말씀을 명심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어코 성공하고야 말겠습니다.”
제너가 종두법을 성공한 것은 1796년이었다. 그러니까 우두를 이용한 예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천연두를 연구하기 시작한 지 30여 년이나 지난 뒤였다.
출처 : 왕연중 엮음, ‘꾸러기 발명왕’, =글수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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