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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텔레비젼
비밀 창고의 악동들
1900년 3월, 새 봄을 맞은 글래스고시는 연두색 빛으로 단장하며 가지마다 넓고 푸른 잎들을 내밀고 있었다.
소년 베어드는 친구인 노웰, 워즈워드, 브루스와 함께 자신의 비밀 창고에 모였다.
좁고 작은 공간이었지만 베어드의 창고는 그럴싸하게 꾸며져 있었다.
낡은 합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작업대와 공구들, 그리고 가지각색의 부품들과 한쪽 구석에 간이침대가 있었다.
“와아! 베어드, 이번엔 무얼 보여 줄거니?”
“응, 지난번에 약속했던 전화기를 만들 생각이다.”
“뭐? 전화기, 정말?”
“속아만 살아왔나, 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시작하자.”
소년 베어드는 준비된 공구를 모두 펼쳐 놓고 하나둘 끼워 맞췄다. 어른처럼 침착하게 작업을 이끌어 나갔다.
“워즈워드, 그 나무판자에 전선을 연결해 줄래?”
베어드는 전화기의 몸체인 듯 한 나무 상자를 들어 보이며 친구에게 소리쳤다.
베어드의 친구들도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작업을 도왔다.
창고 위로 따뜻하게 내리쬐었던 햇볕이 차츰 옆으로 기울고 있을 무렵 베어드는 작업대 앞에서 일어나 몸을 털며 말했다.
“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완성이다.”
친구들은 일제히 그에게로 눈을 돌렸다.
“정말 다 되었어?”
친구 중 하나가 미심쩍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다 되었어. 이제 실험을 해야 할 텐데. 어두워져서 어떻게 하지?”
브루스가 말을 받았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에 다시 모여서 실험을 해 보는 게 어떻겠니?”
“좋아, 그럼 내일 다시 모이자.”
“그럼 잘들 가.”
“안녕!”
제각기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은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밤새 뒤척이다 이윽고 아침이 되자, 다시 목사관 창고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서들 와라. 잠을 설친 모양이지? 눈이 빨갛다.”
“그래, 빨리 보고 싶다. 어서 시작해라.”
“알았어. 노웰, 너는 브루스와 함께 집으로 가서 이 전선을 연결하고 기다리고 있어.”
베어드는 지금껏 자신이 구상했던 계획과 실험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난 후 노웰과 브루스를 집으로 보냈다.
비밀 창고와 집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흐른 뒤 베어드는 자신의 비밀창고에 설치한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자, 브루스. 내가 지금 하는 소리가 들리면 대답해라.”
“우와! 베어드 들린다. 소리가, 정말로 네 목소리가 들린다고??”
“브루스, 잘 들리니?”
“응 똑똑하게 들려! 베어드 너는 정말 못말리는 아이다.”
“그래! 성공이다. 성공이야!”
옆에 있던 워즈워드도 브루스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뛸 듯이 기뻐했다.
“베어드! 넌 대단하다. 정말 훌륭해.”
어린 베어드의 전화기 이야기는 곧 온 마을에 소문이 났다.
“들었어요? 글쎄, 베어드가 또 일을 저질렀대요.”
“그 말썽꾸러기가 또?”
“글쎄 전화기를 만들었대요.”
“전화기? 12살짜리 어린애가 무슨?”
“어머, 정말이라니까요. 못 믿겠으면 목사관에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 난 벌써 다 듣고 왔으니까.”
“그래요. 나도 들었어요. 얼마나 신기한지 마트 아저씨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던걸요.”
베어드의 전화기는 마을에서 꽤 오랫동안 화제 거리가 되었다.
존 로지 베어드의 나이 열두 살 때 일이었다.
무너지는 꿈
베어드는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바라던 대로 글래스고 왕립 공과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생이 된 그는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눈에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은 화합물이 빛에 민감하듯이 셀레늄의 전기저항은 빛에 의해 다르게 변한다. 그래? 셀레늄! 바로 이거다. 이것을 좀더 연구해 보자.”
그날부터 베어드는 셀레늄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데만 거의 하루를 다 보냈다.
“빛을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리를 저 먼 곳까지 흘려보내는 것처럼 물체의 모양도 이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움직이는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좋아! 실험해 보자.”
베어드는 셀레늄을 관찰하고 깊이 연구할수록 지식의 한계에 부딪혀야 했고, 설비를 갖춘 연구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셀레늄의 연구를 한지 4년이 지났다.
‘계속해서 이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은데, 연구소에 들어가야 겠는걸??’
베어드는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자신의 진로를 연구소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하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베어드, 전쟁이 일어났어. 지금 군인들을 징집하느라고 난리야. 너에게도 곧 영장이 날아올 거야.”
“뭐? 전쟁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오스트리아가 선전포고를 했대. 곧 싸움이 시작될 거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전 세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베어드의 꿈은 부서지고, 우선 먹고 살기위한 걱정부터 해야 했다.
온 국민들이 전쟁에 쓰일 군수용품을 만드느라 생활필수품 공장의 문을 닫아야 했고, 전쟁으로 인해 부족해진 빵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거리를 배회했다.
전쟁은 베어드에게서 셀레늄 연구는커녕 기본적인 생활과 행복까지 빼앗아 갔다.
‘사는 게 뭔가? 겨우 빵 한 조각 얻자고 내가 지금 이곳까지 달려왔단 말인가?’
베어드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어왔다.
참으로 어둡고 답답한 10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 베어드는 36세가 되었다.
텔레비전의 탄생
1924년, 9월의 아침이었다.
베어드는 여느 때처럼 공장에 가기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창틈으로 새어드는 햇살은 유난히 포근했다.
‘이러다가 늦겠어. 빨리 가야지. 공장장의 잔소리도 지겹고, 서두르자.’
거울을 바라보며 야윈 얼굴을 매만지던 베어드는 서둘러서 웃옷을 걸쳐 입었다.
갈색으로 변한 낙엽들이 발길에 체이는 오솔길을 지날 때였다.
“탕탕?쿵, 뚝딱??”
요란한 망치소리와 기계의 소음과 함께 사람들이 마을 언덕에 무언가를 세우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응? 저게 뭐지?’
탑이었다.
‘도대체 탑을 왜 거기에 세우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아봐야지.’
공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내내 그 생각으로 베어드의 머릿속은 가득 찼다.
공장 일을 마친 베어드는 한달음에 마을의 언덕을 올랐다.
그때까지 탑을 세우고, 마무리를 하는 인부들의 손놀림은 매우 분주했다.
“저, 잠깐만요. 지금 뭐 하시는 거지요?”
“보면 모르세요? 탑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인부 중 한사람이 그를 힐끗 돌아보며 대답했다.
“아니, 탑을 왜 세우고 있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아참, 바쁜데. 꼬치꼬치 캐묻고 있구먼. 라디오의 전파를 잡기 위해서 세우는 거랍니다. 그걸 모른다니 원??”
“라디오! 전파?”
순간 베어드의 머릿속으로 강하게 울리는 자극이 있었다. 그의 눈앞으로 어린 시절의 일들과, 대학시절의 꿈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스쳐지나갔다.
베어드는 다시 대학시절의 꿈을 살려 셀레늄 연구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저 빛의 영상들을 전기로 바꿀 수 있을까?’
그의 고민 또한 다시 시작되었다.
‘이젠 더 이상 재료를 살 수도 없고, 부속품을 사지 못하면 연구를 계속 할 수 없을 텐데??’
속수무책으로 4개월이 흘렀지만, 나아진 것을 없었다.
라디오 전파 탑이 설치되는 모습을 보고 깨달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셀레늄 연구에 몰두한 지 몇 개월이 흘렀어도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 실망에 찬 눈으로 화면을 주시하던 베어드는 스크린에 잡음과 함께 무언가가 흐릿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지지직, 지이익??”
그는 눈을 반짝이며 흔들리는 화면을 주시했다.
“응? 저게 뭘까?”
베어드는 스크린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원판 앞에 세워둔 인형의 모습이 분명했다.
“축 늘어진 두 팔과, 허공을 쳐다보며 웃는 웃음, 그리고 기울어진 목??”
‘아! 드디어??’
화면에 비친 물체의 모습을 확인한 베어드는 기뻐서 손을 흔들며 방안을 뱅뱅 돌았다.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젠 광고를 내서 후원자를 찾아봐야지.’
예상했던 대로 베어드의 광고를 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구비를 대주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 텔레비전의 힘이 얼마나 클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연구는 잘 진행되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우하하?하하, 여보게 세상에 그런 멍청이가 살고 있었다니!”
“응? 무언데?”
“아, 글쎄. 베어드라는 발명가가 자기가 만든 발명품이 터져서 기절했대.”
“자기 발명품이 뭔데?”
“텔레비전, 아무튼 전압이 터졌데”
베어드의 텔레비전에 관한 소식은 신문사에 알려졌고, 신문기자들은 특종을 싣기 위해 베어드의 연구실에 몰려들었었다. 그런데 200볼트의 전압이 터지는 바람에 우스꽝스런 모습만 보여주게 된 것이다.
신문의 기사는 베어드에게 수치심만 안겨주었다.
베어드는 연구소를 정리한 후 런던으로 이사했다.
“런던에서의 생활은 어때?”
오랜만에 베어드와 만나게 된 어릴 적 친구의 물음에 그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응, 도시가 크니까 물품이나, 기계를 구입하기도 쉽고, 연구는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네.”
“그래? 이제 곧 완성되나?”
“응, 기대해도 좋네.”
1925년 10월 2일, 베어드는 마침내 런던에서, 조금 조잡하기는 했지만 완전하게 형식을 갖춘 텔레비젼을 발명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이름은 순식간에 세계에 알려졌고, 텔레비전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많은 기자들과 과학자들은 그를 칭찬했다.
“베어드씨! 당신은 정말 위대한 발명가입니다.”
“이 텔레비전으로 전 세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곧 한 눈에 보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축하합니다.”
“베어드씨, 앞으로 연구비 걱정은 마십시오.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불행 속으로
그러나 그의 인기와 명성은 잠깐, 다시 불행은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베어드, 큰일 났네! 미국의 벨 전화연구소가 텔레비전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네.”
미국의 벨 전화연구소는 재력이 막강했고 천명이 넘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커다란 연구소였다. 그에 비하여 베어드는 혼자서 연구, 식사준비, 청소 등 그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따라 잡을 수 없는 큰 산과 같은 상대방과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베어드는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며 단파를 이용하여 영국 런던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최초의 대서양을 횡단하는 방송을 했다.
영국의 방송사(BBC)는 1930년 베어드의 텔레비전이 개선되어 시장에 나오자 정기적인 텔레비젼 방송을 시작했다.
베어드의 발명이 상업적으로 즉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1939년까지 영국에서는 2만 명이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벨 전화 연구소가 1936년 영국의 텔레비전 방송 계획의 방송결정권을 따내게 되면서 베어드는 다시 가난과 병마와 싸워야하는 외로운 과학자가 되어야 했다.
1946년 6월,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과학자로서의 외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연구를 통해 그의 꿈을 실현시키며 열심히 노력해왔던 한 인간 베어드에게 죽음이 찾아들었다.
“콜록, 콜록, 으으음??”
어둡고 좁은 그의 방안으로 6월의 긴 해가 마지막 손짓을 했다.
그의 침대 맞은편에는 그가 생전에 아끼고 매만졌던 책들이 쌓여 있고, 타다 만 촛불은 열린 창문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을 발명했는데도 베어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 져 갔다. 그러나 자신의 평생을 연구에 몰두했던 베어드의 연구의지와 발명에 대한 꿈은 우리의 작은 가슴 속에 깊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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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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