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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대신 카바이드
1
“요즘 모어헤드는 연금술에 푹 빠져 있다지?”
“연금술? 그게 무슨 말인가? 아무리 모어헤드가 엉뚱하지만 그정도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아닐 텐데?”
“자네도, 소식이 늦군. 그 뭐라더라 알루미늄이라던가? 그 제조법을 연구하는 모양이야. 성공만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더군. 그게 연금술이 아니고 뭐겠는가?”
“하하하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군. 그런데 모어헤드가 그 일에 뛰어들었단 말야? 쉽지 않을 텐데”
“그러게 말일세. 나도 약간 걱정이 돼. 그나마 재산이라고 있는 공장마저 날리지 않을까 몰라”
모어헤드는 미국 노드 캐롤라이나주에서 이름 없는 작은 공장을 경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모험심과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할 끈기가 그를 다른 사람과 구별 지을 뿐이다. 그를 아는 이들은 모두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끈기에 혀를 내둘렀다. 덕분에 주변 마을에 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그가 알루미늄 제조연구에 뛰어든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를 아는 친구들은 모두 모어헤드가 무모하게도 불가능한 일에 뛰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당시 알루미늄은 은보다 더 값어치 있는 값비싼 금속이었다.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흡사 금광을 찾아 헤메는 광부들처럼 알루미늄 제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만 1886년 미국의 찰스 마틴 홀과 폴루이에르가 각각 독자적으로 개발한 방법이 부분적으로 쓰이고 있을 뿐이었다.
모어헤드가 알루미늄에 관심을 갖은 그 시기에도 아직 많은 이들에게 알루미늄은 환상의 귀금속이었다. 알루미늄의 값어치를 아는 사람들은 알루미늄 제련법에 도전하는 일을 금을 만드는 일에 비유하였고, 중세의 연금술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모어헤드 같은 가난한 중소기업 사장이 이일에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모어헤드를 아끼는 친구나 가족들도 마찬가지 였다.
2
“물론 힘들 거야. 하지만 난 확신이 있어. 분명 마틴 홀이 개발한 방법이외에도 더 경제적인 제련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야. 냉정해지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매달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겪었는지 벌써 잊었는가?”
“그 정도 각오는 나도 하고 있다고 분명 길이었어.”
모어헤드는 고집스레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말없이 탁자위에 놓인 찻잔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그도 상당히 지쳐있었다. 문득문득 회의가 일 때도 있었다. 그저 한 가지 알루미늄 제련법 개발이 큰돈과 명예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으로 참아내고 있었지만 주위에서 한결같이 말리니, 심지 깊은 그로써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칼을 뺏으니 무라도 베야겠다고 다짐한 터였다.
“날 좀 믿어주게. 길이 있어. 게다가 날 도와줄 사람도 곧 올 거야.”
그는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엷게 웃음 지었다.
“자넨 정말 고집 장이라니까? 그런데 협력자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윌슨이라는 캐나다사람인데, 발명가라고 하더군.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함께 연구하자고 제의를 해왔어.”
“뭐? 발명가?”
“그래.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하더군. 내가 일단 만나보자고 했지. 이번 열차로 도착할걸세?”
모어헤드는 벽에 걸린 시계를 응시했다. 시계는 벌써 오후 5시를 가르 키고 있었다. 창문너머로 커다란 가방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막 기차가 도착한 듯 했다.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벌써 도착했겠는 걸?”
그가 말을 막 마치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소매 끝이 헤졌으나 꽤 손질이 잘된 깔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였다.
“저어 혹시 모어헤드씨 아닙니까?”
“윌슨씨? 반갑습니다. 제가 바로 모어헤드입니다.”
모어헤드는 벌떡 일어서 낯선 사내의 손을 잡았다. 그의 얼굴에 갑자기 홍조가 피어올랐다.
“반갑습니다. 같이 일하게 되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윌슨도 그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그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운명적 만남이었다.
3
윌슨이 제안한 방법은 철을 제련할 때 쓰는 방법을 그대로 알루미늄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즉 산화알루미늄에 숯을 섞어 가열하여 산소와 알루미늄을 분리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단순하게 철을 제련할 때보다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다.
“높은 온도는 어떻게 얻지요?”
“방법이 있습니다. 전기로를 사용하면 될 겁니다.”
“전기로라?”
귀가 솔깃해지는 아이디어였다. 모어헤드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자본은 내가 끌어들이지요. 당장 시작합시다.”
모어헤드와 윌슨은 바로 알루미늄 제련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계들을 사들이고, 회사를 설립했다. 물론 모든 자본은 모어헤드가 투자했고, 윌슨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제공키로 했다. 전기로와 석탄 그리고 산화알루미늄을 사들이는데 만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모어헤드는 자신만만하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하였다.
그러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다시 한 달 두 달이 되어도 모든 것은 처음과 같았다. 도무지 알루미늄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과연 듣던 대로 알루미늄 제련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제 서야 모어헤드는 윌슨의 방법을 검증하지 않고 뛰어든 자신이 무모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다.
늦은 저녁, 윌슨이 상기된 표정으로 모어헤드를 찾아왔다. 실험의 실패로 사이가 서먹해져 있던 터라 모어헤드는 썩 내키지 않은 심정으로 그를 맞았다. 그러나 윌슨은 이전의 일은 모두 잊은 사람처럼 들떠 있었다. 마치 금광이라도 찾아낸 사람 같았다.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요? 윌슨씨.”
“좋은 일이요? 그럼요. 좋은 일이고 말구요. 문제점을 알아냈어요!”
“문제점이요?”
“그렇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니 전의 아이디어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알루미늄을 산화하기위해선 매개체가 있어야하지요”
“매개체라?”
윌슨은 다소 흥분한 듯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생석회에 숯을 섞어 가열하여 환원시킨 후 금속칼슘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나서 그 금속 칼슘을 산화알루미늄에 섞어 가열하여 산화알루미늄의 산소를 빼내고 순수한 금속 알루미늄만을 분리해 내는 겁니다.”
“금속칼슘?”
“네, 생석회는 아시다시피 산화칼슘 아닙니까? 따라서 산소만 제거해주면 훌륭한 금속칼슘이 되는 거지요. 금속칼슘이면 훌륭한 매개체가 될 겁니다.”
윌슨의 확신에 찬 설명에 모어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습니까?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렇군요. 이제야 의문이 좀 풀리는 것 같군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윌슨의 새로운 이론을 완전히 믿은 모어헤드는 다시 금속칼슘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두 번의 실패는 어쩜 당연한 건지도 몰라. 처음부터 완벽한 결과를 얻어내려 한 것은 자만이나 마찬가지였어.’
그는 첫 번째의 실패를 성공으로 가기위한 디딤돌이라고 여기며 연연해하지 않았다. 누군가 위로의 말을 하려 치면 그는 ‘하하하. 당연한 일이지요.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요?’라며 시원하게 웃어넘기곤 했다. 어쨌든 그는 첫 번째 실패를 발판삼아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들이 처음에 해야 할 일은 매개체 역할을 할 금속칼슘을 만드는 일이었다.
윌슨과 모어헤드는 콜타르와 생석회를 섞어 전기로로 가열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방법은 처음의 방법과 마찬가지로 헛 점이 있었지만 둘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금속칼슘을 매개체로 산화알루미늄에서 산소를 분리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이론적으로 타당했으나, 금속칼슘을 만드는 방법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산화칼슘을 숯으로 가열해서 산소를 제거하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다. 어쨌든 둘은 전기로에 매달린 채 금속칼슘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4
1892년 어느 날 이른 아침,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좁은 건물 안을 뒤흔들었다.
“모어헤드씨! 모어헤드씨!”
“무슨 일입니까? 윌슨씨. 이 이른 아침부터?”
모어헤드는 눈을 부비며 고개를 쳐들었다. 제대로 자지 못한 듯 꺼칠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해낸 것 같습니다.”
모어헤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금속칼슘 실험이 서서히 결과를 맺을때가 됐다는 사실이 그를 긴장하게 했다.
“혹시 금속칼슘이?”
“아직은 확실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나오긴 했어요.”
모어헤드와 윌슨은 서둘러 실험실로 향했다. 모어헤드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아!”
모어헤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금속과 같은 광택, 아무리 봐도 금속칼슘 같았다. 윌슨은 그 전기로에서 건진 결정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어떻습니까? 이 광택은?”
“그래요. 금속칼슘인 것 같군요.”
둘 사이에 미소가 흘렀다.
“물에 넣어보도록 합시다. 칼슘이라면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물 밖으로 방출할 테니까요”
윌슨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물이 그득히 담긴 수조에 결정체를 넣었다. 모어헤드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결정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부글거리며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수조 가득히 거품이 올라왔다. 예상대로 기체가 발생한 것이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기체가 수소라는 것을 밝히기까지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모어헤드는 부글거리는 거품위로 가만히 불꽃을 대보았다. 다음 순간 순식간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성공이야!”
윌슨과 모어헤드는 두 손을 맞잡고 벌떡 일어났다. 스스로 타는 것을 보니 수소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산화알루미늄을 환원하는 일만 남았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이번에는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둘은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서로의 고충을 위로했다. 알루미늄 제조의 비밀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만 같았다.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이나 좌절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윌슨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히고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표정이었다. 윌슨의 태도변화에 어리둥절해진 모어헤드는 영문을 모른 채 그의 시선을 쫓았다. 그의 시선은 방금 실험을 끝낸 수조에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이?이런?”
모어헤드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통스런 신음을 뱉어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조에선 아직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노란색의. 그리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수소라면 절대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를리 없었다. 그리고 불빛도 거의 무색이어야 했던 것이다.
좀 전의 기쁨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무거운 좌절감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윌슨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모어헤드도 멍하니 서서 수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5
모든 것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남은 것이라곤 실패한 결정덩어리들 뿐이었다. 윌슨과 모어헤드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사람들처럼 힘을 잃은채 방황하였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군?’
모어헤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윌슨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에 더욱 화가 났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아니야, 이것도 좋은 경험이지’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돌이킬수 없는 일이기에 후회하는 자신이 바보스럽기도 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내게 남은 거라곤 빚더미와 정체모를 실패덩어리들 뿐인데?’
희비가 엇갈리던 그날 아침의 작은 소동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노란 불꽃을 발견하던 그 순간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참. 그런데 그 기체는 도대체 뭐지?’
모어헤드는 자신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좌절이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만 것이었다.
‘이럴 수가?’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로 실험실로 향했다. 수조와 전기로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실험도구가 그날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다시 수조에 결정체 덩어리를 넣었다. 거품이 일고 그때와 같은 노란 불꽃이 번져 나왔다.
‘도대체 이게 뭘까?’
그의 눈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6
“윌슨! 윌슨!”
모어헤드의 다급한 부름에 윌슨이 천천히 몸을 들었다.
“우리가 얻어낸 게 뭔줄 알아요? 카바이드라고요. 카바이드.”
“카바이드?”
윌슨이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방금 실험을 끝냈어요. 확실합니다. 틀림없는 카바이드예요”
“사실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윌슨은 같은 물음을 반복했다. 모어헤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금속칼슘이 아닌 탄화칼슘, 즉 카바이드였다. 그리고 물에 넣었을 때 생긴 기체도 수소가 아닌 아세틸렌 가스였다. 즉 그들은 카바이드의 새로운 제조법을 발견한 것이었다. 카바이드는 석회질소를 만드는 데 절대적인 것으로 당시에는 알루미늄 못지않은 물질이었다.
“알루미늄은 못 얻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겁 니다. 하마 트면 그 성공을 몰라볼 뻔 했어요. 정말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뻔 한 거지요.”
윌슨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번졌다.
“그랬군요. 우리의 실패가 실은 다른 성공이었다니?”
“다시 해봅시다. 이번에 카바이드 제조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윌슨과 모어헤드는 다시 손을 맞잡았다.
그 후 윌슨과 모어헤드는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카바이드 제조법을 확립하고, 미국 특허까지 획득했다. 그리고 이 제조법은 백 여 년이 넘도록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애초에 꿈꾸었던 알루미늄 제련법은 이룰 수 없었지만, 그들이 얻은 성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값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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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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