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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왕
훌륭한 발명가가 되려면 숫자에 대해 무감각해야 하는가 보다. 실험의 횟수가 천 건이 넘는 것은 보통이고, 특별한 경우엔 만 단위를 훌쩍 넘어서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기가 질려 지레 포기할 양이다.
어쩐지 미련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좀더 능률적인 대안 책은 없는 것일까? 꼭 필요한 실험만 효율적으로 한다면 시간적 낭비는 줄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발명가들은 한 목소리로 답한다.
‘사금을 얻기 위해선 강줄기를 따라 모래바닥을 모두 훑어야 합니다. 가치가 있는 것은 그만큼 얻기 힘든 법이지요. 발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은 노력으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입니다.’
우리가 손쉽게 듣고 말하는 발명 일화에도 훨씬 많은 땀방울이 스며있는 게 틀림없다. 하긴 TV에서 단 몇 초 동안 방영되는 선전 한 컷을 찍기 위해, 출연진은 한 박스나 되는 라면을 먹거나, 똑같은 춤을 수십 번도 더 추어야 한다하니, 훨씬 까다로운 발명 작업이야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빙산의 일각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다익선. 아이디어의 숫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처럼 숫자의 제한을 받지도 않고, 그린벨트와 같이 개발 제한으로 묶인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재료를 모으고, 많은 실험을 하라. 숫자의 단위 따윈 잊는 것이 좋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진주의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미키모토 고노이치.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진주조개와 씨름하며, 양식진주 생산의 길을 연 장본인이다.
사람들은 그를 진주에 미친 사람, 진주조개에 목숨을 건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조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늘 상 조개 양식장에서 살았고, 진주조개밖에 몰랐다. 심지어 그의 가족조차도 그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진주를 보다 쉽게 얻어낼 방법은 없을까?’
진주는 진주조개 내로 들어간 이물질에 진주 실이 싸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그는 줄곧 인공 진주 양식에 주력해왔다.
커다란 양식장을 마련해서, 밤낮없이 씨름을 했지만, 연구는 항상 제 자리 걸음이었다. 조개에 모래를 넣어 실험을 하며 좋은 결과를 기대했지만, 진주조개는 번번이 병을 앓다가 죽어버렸다.
‘조개가 죽는 이유가 뭘까? 혹시 수온이 알맞지 않은 걸까?’
그는 조개 양식장의 수온을 조절하여 보고, 물에 약품을 타기도 하고, 때때로 모래를 삽입하는 위치를 바꾸는 등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항상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물의 온도를 낮추거나 높여도, 조개는 계속 병들어 죽어갔다.
이렇게 별 소득도 없이, 실패만 거듭하니 그가 겪는 곤란은 이만저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고통이 뒤따랐다.
“그만두게. 이게 무슨 꼴인가?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는지 알기나 하나? 빨리 포기하도록 해.”
친구들까지 노골적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곤란 속에서도 여전히 태연했다.
“이제 고작 2,000번의 실험을 했을 뿐이야. 시작이라고.”
그의 신념에 찬 장담에,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2,000번의 실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에는 어떤 설득이나 만류가 통할 리 만무했다.
주위의 우려가 잠잠해지자 미키모토는 다시 자기만의 세계로 몰입했다. 그는 많은 실패로 이전의 방법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법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조개 속에 삽입하는 이물질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나무, 돌, 유리, 쇳조각, 종이 등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재료로 이용하였다. 이렇게 수집된 종류만도 수백 가지에 이르렀고, 이것을 진주조개에 삽입하는 방법도 각각 변화시켜, 실험의 횟수는 무려 이만여회에 이르렀다. 진주조개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그의 손 안에서 감지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철저한 포위망 속에서 해답이 빠져나갈 수는 없는 법. 그는 결국 조가비를 이물질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 경우, 조개의 발병률도 급격히 감소했고,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시간도 훨씬 단축됨이 밝혀졌다. 오랜 각고 끝에 얻어낸 열매였던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조가비를 조갯살로 싸서 삽입하는 방식을 개발하였는데, 당시로는 가장 효과적인 진주양식 방법이었다. 그는 이 방법들을 정리하여, 특허를 출원하였다. 그의 독특한 양식 방법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이때부터 그는 ‘진주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키모토에 의해 개발된 진주조개 양식 법은 약 10여건에 이르는데, 이것은 약 3만여 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얻어낸 것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즉 그는 겨우 10건의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3만 번의 실패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에 익숙하여, 빨리 빨리만 외치는 이들에겐 공감을 얻지 못할 부분일지도 모르겠으나, 미키모토와 같은 이의 이야기는 발명의 세계에선 허다하다.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정말 쓸모 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문석이나 부드러운 실크 스카프, 화려한 카펫의 올 수는 얼마나 될까? 수천? 아니면 수만?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가닥이 모여서 만들어진 아름다움. 그 중 몇 가닥만이라도 모자란다면, 어색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발명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실험 자료라는 날실과 씨실이 모두 모여야 비로소 하나가 됨을 잊지 말자.
글 : 왕 연 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공무원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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