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브랜드가치 세계 26위)
월가의 큰손 중 큰손은 역시 금융사다.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사는 3개 투자은행과 2개 상업은행으로 압축된다. 메릴 린치,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는 투자은행(증권지주사)이며 JP모간체이스, 씨티그룹은 상업은행(은행지주사)이다.
1999년 '그램-리치-브릴리 법(Gramm-Leach-Bliley Act)'이 제정되자 JP모간체이스가 JP모간증권을, 씨티그룹이 살로먼스미스바니(SSB)를 증권 자회사로 보유하는 등 투자은행-상업은행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지만 위의 분류는 아직 유효하다. 이 중 최초로 현대적인 증권사의 문을 열었고, 월가 개혁의 선봉장인 메일 린치를 먼저 만나본다.
메릴 린치를 상징하는 뿔 달린 ‘황소’ 로고가 처음 소개된 때는 71년 월가 증권사 중 처음 주식을 공개했던 때다.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뒤 메릴 린치는 이를 기념하고 회사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 상업 광고를 송출했다. 공중파 TV를 통한 메릴 린치의 광고 내용은 “메릴 린치는 아메리카의 황소입니다(Merill Lynch is bullish on America)”였고, 이 때부터 황소는 메릴 린치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황소(bull)’라는 단어는 ‘로마 교황의 교서’라는 뜻과 ‘황소처럼 성난 활황장’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유태인들이 대다수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월가에서 유일하게 카톨릭 교도가 경영을 맡고 있던 메릴 린치에게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로고였다. 특히 당시 ‘투기판’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월가에서는 더욱 그랬다.
증권 투자에 무슨 ‘카톨릭’이냐고 반문할 지 모르나 당시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60년대 중반 활황장에 고무된 개미 투자자들이 버블에도 불구 우후죽순 증시에 몰리면서 증시는 투기장으로 변질됐다. 컴퓨터가 없던 증권사들은 정산을 위해 앞다퉈 전산화 장비를 갖춰 나갔지만 이 비용을 대지 못했던 증권사는 파산이 불가피했다. 증권사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이는 다우지수의 폭락으로 이어지며 월가를 등지는 투자자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메릴 린치가 내세우는 ‘카톨릭’ 이미지는 ‘신선함’과 ‘절제, 도덕’ 등의 이미지를 풍기는 것이었다. 메릴 린치는 전산화 투자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IPO라는 승부수를 꺼냈고,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황소’를 내세워 상업 광고에 나섰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월가 역사상 처음으로 증권사의 주식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는 사례를 만들면서 동시에 “메릴 린치는 투기를 조장하지 않는다”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월가는 메릴 린치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투자기관다운 면모로 일신하게 됐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70년대 이전에도 메릴 린치가 앞장서 개혁에 나섰던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창업자 찰스 메릴은 과도하게 투기를 부추겼던 증권브로커들에게 “정직과 금융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는 곳으로 월가는 거듭나야 한다”라고 밝히며 이들을 개화시켰다. 당시(1948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증시가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던 때였다.
그는 증권사 지점을 만들어 난립하던 증권 브로커들을 자사 소속 전문가로 채용했고 이를 전국적인 체인망으로 확대했다. 현대적 의미의 증권사 체제는 이 때 만들어졌다.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주지 않고 연봉을 지급하면서 투기를 부추기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찰스 메릴은 회고했다.
‘메릴 린치식 증권사’는 이후 월가의 대세가 됐고, 월가는 보다 현대적인 투자의 장으로 거듭 태어났다.
사명으로 본 역사 :‘메릴 린치’라는 사명은 ‘찰스 메릴’이 자신의 증권사 브로커 사무실이던 ‘찰스 E 메릴’을 채권 전문 브로커 사무실인 ‘에드먼드 린치’와 합병(1915년)하면서부터 사용했다. 대공황기 ‘E.A.피어스’에 회사를 매각하며 잠시 휴식기를 거친 뒤 30년대 중반 다시 경영권을 잡고 회사 이름을 ‘메릴 린치 E.A 피어스 캐서트’로 바꾼다.
이후 뉴올리언스에 기반을 둔 ‘페너 앤 빈’을 인수해 회사 이름을 ‘메릴 린치 피어스 페너 빈’으로 변경했다. 1958년 빈이 은퇴하고 ‘윈드로프 스미스’가 추가되며 사명은 다시 ‘메릴 린치 피어스 페너 앤 스미스’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메릴 린치라고 부르는 것은 73년 설립된 지주회사 이름. 다시 말해 ‘메릴 린치’라는 지주 회사 아래 ‘메릴 린치 피어스 페너 앤 스미스’라는 증권사가 있고 ‘메릴 린치 모기지 캐피털’ 등 기타 다른 투자 회사들이 자회사로 소속돼 있다. 우리 나라와 비교하자면 은행 지주회사가 아닌 증권 지주회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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